신선이 옷자락을 펼치며 노니는 듯 무리지어 있는 섬! 고군산군도는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를 연결해 주는 시간박물관이며 보물창고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역사이야기가 시대별로 가득하다. 세계 최장 길이 33.9km 새만금 방조제가 개통 된 후 연륙교까지 완성되면서 섬 전체를 차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비응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섬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달리다보면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바다색이 확연히 다르다. 오른쪽은 바다는 검푸른 파랑에 부딪히는 햇빛으로 생기가 넘친다. 하지만 방조제로 갇힌 왼쪽의 바닷물은 움직임이 없어서 숨이
15세기 포르투갈에 의해 식민지 지배로 시작 된 제국주의는 20세기에 이르러 막바지 발악을 한다. 모든 유기체가 죽어가는 시점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하듯이 국가도 마찬가지 행태를 띤다. 일본은 제국주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생존을 위해 식민지에서 가장 악랄한 억압과 핍박을 일삼았는데 그 대상인 조선이었고 그 중에서도 군산은 수탈의 정점 기지역할을 한 지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강점기 근대역사 하면 생각나는 도시를 군산이라고 말한다. 작은 진포, 포구였던 군산 바다를 매립하여 인구 5만의 근대 계획도시로 만든 것이 군산이기 때문이다
동네 터줏대감님의 안내로 한나절 개정마을 여행을 했다. 이번글은 기행문이다. 첫 번째 방문지는 개정면 아산리 장군봉 아래에는 장군샘이다. 그 옛날 동네에 힘센 장수가 살고 있었단다. 장수는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는 늘 커다란 바위로 샘을 닫아 놓아 누구도 열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해인가 전쟁이 일어났고 장수는 샘물을 닫지 않고 전쟁터에 나갔다. 그리고 전장터에서 장수가 전사를 했다. 그 뒤 그 샘을 장군샘이라 불렀고 샘 뒷산을 장군봉이라고 했단다. 장군봉의 기운을 받아서 일까 개정에서는 임진왜란에 칠전량 해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나타남이다.(옥구읍) 고랑과 이랑으로 이어지는 기름진 옥구(沃溝) 들은 진초록으로 일렁인다. 쏟아지는 햇빛이 더 스며들면 황금빛으로 반짝일 넓은 들판은 이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희노애락의 원천이다. 농부의 바램, 성실, 햇빛과 바람과 비가 어우러져 익어갈 들판 위 옥구들을 구성하고 있는 마을의 이름은 상평리, 이곡리, 옥정리, 선제리, 오곡리, 어은리, 수산리이다. 사람의 이름처럼 지명도 마을의 특징과 소망을 담고있다. 관아가 있었던 상평(上平)리는 윗뜰이다. 이곡(耳谷)리는 귀의 모습을 닮은 지형이다
지명은 역사와 문화가 담긴 실뭉치이다. 지명의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와 문화를 솔솔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군산시 회현면 실타래를 풀어가려 한다. 회현은 원래 회미현이었다. 회미의 미자는 꼬리라는 뜻이다. 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다. 옛날에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중에서 마지막 끝물이라 해서 회미였다. 회미는 신라 경덕왕 때 전국의 지명을 두 글자로 된 한자식으로 통일 할 때 만들어진 이름이다. 마한시기에는 부부리국으로 54개 소국 중의 하나였다. 그 주변에는 시산국(임피), 마서량국(옥구)이 인접해 있었다. 고려시대에
지명은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으며 지형의 특징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한다. 임피(臨陂)는 다다를 임자에 방죽피자를 쓴다. 방죽이 많아서인지 옛부터 가뭄 피해를 입지 않는 지역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용이 출현한 몇 안 된 곳으로 기록되어있다. 마한시기에는 시산국이었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임피가 된다. 7개리로 이루어졌는데 남산을 기준으로 서북쪽으로는 읍내리, 축산리, 미원리 남동쪽으로는 영창리, 보석리, 술산리, 월하리가 있다. 마을의 이름을 풀어보면 재미있다. 관아가 있던 읍내리, 독수리 모양을 띈 산이어서 취성산이라고 불렀다가 축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시면서 그 근원을 생각한다’라는 뜻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우리를 살리는 것들에 대해 고마움을 갖는 마음은 나도 살고 공동체가 사는 지름길이다. 마을이야기를 생각 창고에 담다보면 물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마을에서 살고 있고, 살다간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는 마을의 산천과 닮아 있다. 물방울 하나를 보고 큰 바다의 원리를 알 수 있고, 모래 한 알 속에서 사막의 원리를 알 수 있듯이 작을 마을을 여행하면서도 역사의 원리를 알 수 있다. 이 번 글에서는 성산면의 창오리, 성산리, 여방리의 옛사람들의
역사를 아는 것은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역사하면 역사책이 떠오르고 어렵다는 생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통해 얻는 지혜는 이론과 더불어 옛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 위에서 그들처럼 바람과 햇빛 속을 거닐고 풀내음도 맡고 빗소리도 들을 때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옛사람들의 흔적은 사람이 살았던 곳이면 어디나 존재한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내가 살고 있는 고장 여기저기에 있다. 작은 마을 속에 우리의 선조들이 삶으로 체득한 지혜의 원리가 가득하다. 주력 문화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