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한풍루는 조선시대 무주군 관아에서 세워 명사와 묵객들이 풍류를 즐긴 역사와 문명이 서려있는 곳이다. 무주군청에서 남대천 방향으로 가다보면, 예체문화관 주변의 지남공원에 위치해 있다.

선조때 문신 임제가 호남의 삼한(三寒) 무주 한풍루, 남원 광한루, 전주 한벽루 중 무주 한풍루가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누각이다. 조선시대 묵객들은 글쓰기 좋은 곳으로 평을 내리면서 최고의 누각이라는 데 이견들 달지 않았다. 전라북도로 부터 1973년 6월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됐다.

◇명사와 묵객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다
조선전기에 건립(연면적 154.9㎡)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연대는 파악할 수 없다. 방화와 인근 영동군으로 팔리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비바람을 맞은 소나무가 더욱 단단한 법이다.

인고의 세월을 거치면서 더욱 위풍스럽고 단단한 모습을 지닌 한풍루는 우리네 삶속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오늘까지 잘 버티어 왔다. 2층 팔작지붕 건물로 아래층은 앞면 3칸 옆면 4칸으로 돼 있으며 윗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다. 2층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고 우측에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개구부가 있다.

2층은 두리기둥을 세우고 창방과 결구한 후 팔작지붕을 얹었다. 1592년 왜군의 방화로 소실됐다가 1599년 재건에 착수하였으며, 1774년까지 보수와 중수과정을 거쳤다. 1936년에는 영동 양산명 가곡리 금강변으로 옮겨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60년대에 비로소 한풍루 복구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1971년 무주군 무주읍 지남공원 내 현 위치로 이건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풍루에는 강암 송성용 선생이 쓴 현판(190×73cm)이 걸려 있다. 한풍루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남원 광한루, 전주 한벽루, 무주 한풍루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혔다는 점이다.

옛 선비들과 풍류가들은 한풍루를 향한 후한 점수를 줬다. 무주지역 문화해설가들의 해설을 종합해 보면 한풍루가 풍광이 좋고 시원스런 지형적 환경을 갖고 있어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도 좋았던 곳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풍루의 한(寒)은 차가움을 뜻한다. 무주 한풍루가 아름답고 시원해서 명사와 묵객들로부터 찬사를 받기에 필요충분조건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할 때 굵은 소금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흐트러짐이 없이 견고하게 건축돼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한풍루 주변에 근린공원과 체육시설 조성, 그리고 호국보훈의 현장
무주 한풍루는 전북지역 전통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누각으로, 조선시대 명사들의 글·그림과 더불어 누각 자체의 외관이 수려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한풍루가 자리한 지남공원은 주변에 체육시설이 조성돼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다 지남공원을 축으로 한풍루 주변에는 충혼탑을 비롯해 6.25참전기념비, 무주학도 6.25 참전 기념비, 월남참전기념비, 국가방위군 6.25 무주수복 공적비 등 호국을 대표하는 현충시설이 즐비하다.
청소년들에게 나라사랑을 일깨우고 호국의 이념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적 가치가 큰 곳이기도 하다. 한풍루 바로 좌측에 놓여 있는 수십년생으로 보이는 버드나무의 운치 또한 일품이다.

무주군이 편의시설과 체육시설, 그리고 조명시설까지 갖춰 국내 최고 누각이 존재한 지남공원을 지역 명소로 꾸며 놓았다.
무주 한풍루는 호남지방에서 가장 아름답고 시원한 풍치를 즐길 수 있어 ‘호남제일루’ 라고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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