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꿈이 없는 젊은이들을 게으르다고 타박하기 바쁘다. 그들이 왜 꿈을 꿀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고싶어 하기 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처럼 보채기 일쑤다.

이런 세상에서 당당하게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긴 해요'라며 개구진 미소를 짓는 한 청년농부가 있다. 부모님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열심히 좇으며 꿈의 텃밭에 첫 삽을 뜨고 있는 연미농장의 안효성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편집자주

동그란 안경을 쓴 안효성 대표를 만나기 위해 폭우를 뚫고 남원시 주생면을 찾았다. 구불거리는 시골길을 지나 만난 것은 그림같이 예쁜 집과 우아한 연꽃농장이었다.

한눈에 봐도 앳된 모습의 안 대표는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과 함께 가업을 잇고 있는 '초보 농부'였다.
사람이 좋고 노는게 좋았단다. 고등학생이 되고 부터는 놀면서도 주위의 눈치가 보였다.

자꾸만 꿈을 묻는 어른들이 늘어갔다. 그런데 정말이지 꿈은 없고, 그냥 더 놀면 안되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고 안 대표는 고백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마땅히 하고픈게 없었어요.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고민도 많았지만 그저 몽상같았죠. 그냥 친구들이랑 노는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도리어 애가 탄 건 부모님이었다. 차라리 하고 픈 것이 있었다면 도와줬을텐데 하고픈게 없다고 하는 아들 앞에서 부모님은 괜한 노심초사를 보일 수 밖에 없으셨다고.

부모님은 마지막으로 제안했다. 하고 싶은게 있다면 무엇이든 도와주겠노라고. 하지만 없다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곤 농사밖에 없다고 못받은 것.
안 대표는 자신이 커올 수 있었던 바탕인 농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 후, 한국농수산대로 진로를 결정했다.
산림조경학과를 전공한 안 대표는 대학시절 동안 얻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람'이라고 답했다. "교육과정이나 실습은 사실 집에서 보고 배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꿈을 키우는 또래 친구들을 만난 것이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말하는 안 대표는 재학시절동안 다져놓은 인적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졸업 후에도 끈끈히 이어져 서로에게 깊은 도움을 주고받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안 대표가 하고 있는 일은 부모님이 평생을 일궈 온 꽃꽂이형 절화소재와 조경수다. 초기비용이 상당히 드는 분야라서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시작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안 대표는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일을 시작한 만큼 부지런히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남원의 대표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미꾸라지를 이용한 추어탕이다. 안 대표는 아버님이 남원시 미꾸라지 협회장을 역임했던 것에 힘입어 2,500㎡에 달하는 연꽃밭에 미꾸라지를 풀어놓고 키우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단순히 추어탕 재료로 납품하는 것을 넘어서 이곳에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찾아 즐길 수 있는 체험형 농장으로 꾸리고 싶다는 것이 안 대표의 청사진이다.
"복합영농을 일구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지금의 농업은 하나의 아이템 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다양한 갈래로 연관짓는 일이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이 평생 일궈오신 화훼부터 조경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체험농장을 꾸리고 싶습니다."

시종일관 웃는 모습으로 인터뷰를 이어가는 안 대표지만 가장 어려운 일을 꼽으니 의외의 대답이 나온다. 부모님과의 상황 조율이 가장 어렵다는 것.

"부모님의 뒤를 이은 저같은 청년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장벽은 결국 부모님과의 의견대립 같아요. 부모님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생각하는 방향도 충분히 이해받고 싶은 것이 사실이거든요. 아직은 부모님에게 일을 배우고 있는 만큼 장기적인 안목으로 부모님과 조율해 나가려고 합니다."
노는게 제일 좋다며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원예치료사 자격증 등 다양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는 안 대표는 이제는 꿈을 확장해 가족들과 함께 체험·공유농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요리를 전공하고 있는 동생과 협업해 가족단위 체험객들을 이끌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부모님의 숙련된 노하우로 조경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교육과 체험을 진행한다는 그림을 3년 안에 펼치고 싶다는 것.
"시국이 시국이라 화훼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만큼 조경과 농사로 눈을 돌렸지만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위기를 이겨내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끊임없는 의견 공유와 소통을 통해 제가 풀어갈 수 없는 어려운 난제도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미 로컬푸드 납품 단가를 결정하는 일까지 맡으면서 부모님과 함께 조경수 관리와 미꾸라지 키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안 대표의 꿈이 반쯤은 완성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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