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점가를 비롯해 우리사회의 화두가 된 단어로 '90년대 생'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중심적이며, 공동의 연대보다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우선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90년대 생의 특성은 기성세대와의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요소로 꼽혔다.
하지만, 자신의 개성을 숨기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독창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것 또한 90년대 생의 진면모. 이런 강점을 가지고 버섯농사에 '올인'한 청년이 있다. 김제에서 느타리버섯과 오디 농사를 일구고 있는 이정원(29)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편집자주

맛있는 빵이 좋았던 정원씨는 제빵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제빵기술은 정원씨가 추구하는 가치와도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힘겨운 농삿일로 자신을 뒷바라지 하는 부모님을 보며 교육비용이 많이 드는 제빵기술을 이어가는 것이 욕심처럼 느껴졌단다. 제빵은 나중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부모님의 주름진 손에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과 함께 가업을 잇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졌단다. 그렇게 아버지가 평생을 일군 버섯농장일을 이어가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오랜 방황을 마치고 한국농수산대학교에 버섯전공으로 입학했다. 지금은 전주로 터를 옮겼지만 정원씨가 입학할 당시만 해도 경기도 화성에 위치해 자취생활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농수산대학교에선 2학년이 되면 모든 학생이 농가로 1년여 간 의무적으로 실습을 나가야 한다. 정원씨 역시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한 버섯농가를 찾았다. 평생 아버지가 일궈오던 버섯농사만 보다가 다른 사람의 버섯농가 운영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된 것. 아버지 농장과 비교했을 때 규모면에선 큰 차이는 없었지만 단 하나, '체계화'면에선 월등히 앞섰던 고성의 농가를 보며 정원씨는 무릎을 탁 쳤다.
"체계화 된 설비와 시스템, 그리고 농장운영 방식을 보면서 나만의 농장을 일군다면 메뉴얼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원씨에겐 이미 든든한 인프라가 있었다. 부모님이었다. 20년 넘게 운영해 온 아버지의 농장은 규모도 컸지만 20년 간 쌓아온 인적 인프라가 엄청났다. 이미 거래처가 확보된 상태나 마찬가지여서 계획적인 생산만 일궈내면 될 정도였다.

실습과 졸업까지 무사히 마친 정원씨는 펄펄 끓는 열정을 품고 본격적인 농사에 나섰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단다. 특히, 평생에 걸쳐 자신만의 농장을 일궈온 아버지와의 마찰은 피할 수가 없었다고.

"학교에서 다양한 것을 보고 배우면서 돌아오면 적용해보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는데 아버지가 보시기엔 영글지 못한 제 열정이 못미더우셨던 것 같습니다. 그 격차를 줄이는 일이 힘들었죠." 호랑이처럼 엄했던 아버지였지만, 끊임없는 의견조율을 통해 이제는 정원씨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마음을 맞춰가고 있단다.
현재 정원씨와 부모님이 함께 하고 있는 농사는 대표적으로 느타리 버섯과 오디 재배인데 특히, 느타리 버섯의 경우 흔히 하는 '병 재배'가 아닌 '상자 재배'를 택했다.

병에 넣어 재배하는 방식은 멸균효과는 뛰어나지만 열이 필요해 연료소모가 극심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상자재배 역시 열을 이용하는 것은 맞지만 정원씨는 '발효'를 이용해 적은 열로 원가절감을 이뤄낼 수 있었다.

말은 쉽게 했지만 결코 그 과정까지 이르는 길은 쉽지 않았다. 버섯은 결국 배양이 가장 중요한데, 버섯 씨앗을 접종해놓고 온도를 비롯해 채광, 습도까지 세밀하게 조율해야만 배양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었다. 해충과 싸우는 건 덤이었다. 그 모든 외부요인을 조절하는 것이 결국 농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일이라는 것을 정원씨는 매년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이토록 힘든 버섯농사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준다는 점은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이라고 정원씨는 솔직히 말한다. 버섯수요도 비수기와 성수기가 있긴 하지만 타 작물에 비해 편차가 현저히 적고, 연중생산이 가능해 자신을 비롯한 부모님의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

오디 역시 정원씨가 공들이고 있는 작물. 흔히들 하는 가공 대신 일단 1차 원물을 직거래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판로를 개척하고 있는 정원씨는 단순히 많이 파는 것에 치중하지 않고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비품은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로 나누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객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1인가구의 증가로 대용량 판매는 실익이 없다고 빠르게 판단한 정원씨는 2.5kg 소포장을 냉동형태로 판매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서비스로 나눠도 다 소비하지 못한 비품은 재학 당시 수업시간에 배웠던 식초 가공을 떠올려 와인과 식초로 만들었다. 그렇게 정원씨는 하나하나 자신만의 성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도 청년농업인을 키우기 위해 그들에게 대출을 늘려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정원씨는 그 부분에서 만큼은 웃음기를 쏙 빼고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대출을 받아 농장을 키우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겠지만, 빚으로 만든 농장 운영이 과연 성장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이냐는 게 정원씨의 생각이었다.

"모두들 6차산업을 말하고, 그것만이 정답인 것 처럼 흘러가고 있지만, 결국은 1차산업에서부터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6차 산업의 부흥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당장 빚을 져 큰 농장, 좋은 시설로 시작하는 것이 좋아보일 진 몰라도 빚을 지지 않고 저렴한 필지를 찾아 바닥부터 일궈나가는 게 진정한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쉬운 길이 아닌, 바른 길을 찾는 정원씨가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묻자 아주 오랫동안 품어왔다는 듯 단번에 답을 내놓았다. 1차산업으로 생산해 낸 농작물을 바탕으로 한 밀키트(HMR) 산업을 일구겠다는 것. 반조리 형태로 손질된 재료를 넣고 끓이거나 볶기만 하면 되는 밀키트는 이미 성장세가 엄청난 상황. 5년 후엔 시장규모가 7천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유망 산업으로 손꼽히는 밀키트 진영에 정원씨가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 덩달아 기대감이 차올랐다.

포기가 아닌 순응, 순응보다는 적응, 적응을 넘어 자신만의 색깔로 버섯 포자를 피워내고 있는 정원씨의 땀방울이 그가 가야할 바른 길에 흩뿌려져 비옥한 결실을 이뤄낼 수 있길 바라본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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