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티벳고원으로 불리는 운봉고원에는 고분군, 제철유적, 산성, 봉수 등 200개가 넘는 남원가야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특히,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2018년 호남지방에서 최초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42호로 지정과 함께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대상으로 선정됐다.

최근 가야문화가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남원 운봉고원은 가야 기문국의 제철유적이 다량 발견돼 철의 왕국으로 크게 조명받고 있다.

화려한 철기문화를 꽃피웠던 남원가야의 발자취를 만나보자. /편집자 주

 

# 운봉고원에서 기문국을 찾다

‘신선의 땅’이라고 하는 운봉고원은 조선 중기의 예언서인 『정감록』에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살기 좋은 열 곳을 일컫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하나로 꼽혔으며, 예로부터 정치와 국방의 요충지였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고대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알려진 철을 생산했던 다수의 제철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철을 바탕으로 가야의 기문국을 비롯해 후백제까지 찬란한 문화를 펼쳤던 역사의 무대로 주목받고 있다.

기문국(己汶國)이 남원 운봉고원에서 처음 존재를 드러낸 것은 1982년 남원 월산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에서였다.

이 조사에서는 고분의 조영 주체가 가야로 밝혀지면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런 까닭에 남원 월산리 고분군은 백두대간 운봉고원에 기반을 둔 가야세력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역사적인 명소가 됐다.

지난 2010년 조사된 월산리 고분군에서는 중국계 청자인 계수호(鷄首壺)와 신라의 천마총과 황남대총 출토품과 유사한 철제초두(鐵劑鐎斗)를 비롯해 귀걸이, 갑옷과 투구, 기꽂이 등 가야계 위신재가 출토됐다.

특히 최근 조사된 청계리 고분군은 현재까지 호남지역에서 확인된 가야계 고총 중에서 가장 이르고, 가장 규모가 큰 고총임이 밝혀졌다.

조사를 통해 발견된 수레바퀴 장식 토기 조각을 비롯해 함안 아라가야계 토기, 왜계 나부 빗(수즐, 竪櫛) 등은 운봉고원 일대 고대 정치조직의 실체와 변화상을 규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됐다.

 

# 기문국, 백두대간을 넘어 세계유산으로

유곡리 및 두락리 32호 고분군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히 도굴됐음에도 금동신발, 청동거울, 토기, 철기 등 140여 점의 유물이 출토돼 운봉가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또한 공주 무령왕릉 출토품과 흡사한 수대경(獸帶鏡)과 금동신발도 출토됐다. 수대경과 금동신발은 가야영역에서 한 점씩만 출토된 최고의 위세품이다.

특히 중국 남조에서 만들어진 수대경은 무령왕릉 출토품보다 앞서는 것으로, 가야와 중국 남조와의 국제외교가 이루어졌음을 암시하는 유물이다.

이밖에도 철촉다발, 말뼈, 토기 40여점, 철기 100여점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돼 기문국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이러한 탁월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호남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 대상에 선정됐다.

 

# 운봉고원 제철유적과 철기문화의 보고

지표조사를 통해 4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운봉고원에 분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백두대간 속 지붕 없는 철 박물관으로 여겨지는 운봉고원의 철광석은 니켈 함유량이 높아 철광석 중 최상급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는 철의 왕국으로 일컬어지는 기문국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백두대간 산줄기 동쪽 운봉고원 일원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가야 소국 가운데 하나인 기문국은 4세기 후반의 늦은 시기에 처음 등장해 6세기 중엽까지 존속했다.

출토된 다수의 유물과 대규모 철산 개발은 운봉고원의 가야세력이 기문국임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자료가 됐다.

 

#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 박차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은 발굴조사 및 인위적인 정비가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된 영남의 고분과는 달리 1,500년 전 가야인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남원시는 현재 문화재청 등재 신청 심의에서 조건부로 가결돼 있는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 7개 고분군을 2022년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향후 진행될 발굴조사에 있어 원형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사방법을 모색하는 동시에, 역사체험 배움 공간 조성, 고분군 탐방로를 조성 등 보존과 체험이 가능한 주민친화형 공간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가야고분군’은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을 비롯한 7개 고분군으로 지난 2019년 3월 세계유산 등재신청 후보로 선정됐으며, 빠르면 오는 7월께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등재신청대상에 선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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