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도 분명 누군가는 뚫고 나온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모든 걸 틀어막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롭게,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자신의 양심을 걸고 행동하는 송곳 같은 선구자가 나온다.

그러한 선구자와 선구자를 따라 나서는 민중이 있기에 우리는 아무리 암울한 상황에서도 저항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1919년 남원에서도 그랬다.

 

남원에도 들불처럼 번진 3.1운동.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삼창 후 일본경찰에 연행되었다.

낭독된 독립선언서는 탑골공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을 비롯한 민중들에게 전달되었고, 수십만 명의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만세운동은 평양, 의주, 안주, 원산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3.1운동 당시 덕과면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이석기는 서울에서 일어났던 만세 운동을 남원에서 확산시키기로 결심한다.

6촌 동생인 이성기와 면직원 조동선을 비롯한 면내 유지들과 비밀리에 모인 이석기 면장은 4월 3일 연례적으로 벌어지던 식수(植樹) 행사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고려해 만세운동을 준비한다.

만세운동에 앞서 이석기 면장은 남원군의 각 면장에게 만세운동참가 취지서와 경고아동포제군(警告我同抱諸君)이라는 격문을 작성해 배포했다.

그리고 드디어 4월 3일, 덕과면 신양리 뒷산인 동해골에서는 식수기념일 행사를 위해 800여명의 남원군민이 모였다. 식수가 끝난 후 행사에 참여한 면민들과 탁주를 나누며 조선의 독립이 필요함을 강조한 이석기 면장은 앞으로 나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했다. 남원에서도 만세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헌병주재소 소장도 어찌할 바를 몰랐고, 이 면장은 행사참여자들을 이끌고 당시 사매면 오신리에 있었던 헌병분견소까지 행진하였다.

헌병주재소 앞 큰길에 당도해서는 제법 큰 무리를 이루었고, 이석기 면장은 많은 사람들과 독립만세를 외치며 계속 시위를 벌였다.

무장군인들이 당도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이 면장은 민간인들의 안전을 걱정해 모든 시위 군중들을 귀가시킨 후, 자진해서 체포된다.

결국 이석기 면장은 1919년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일제의 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기에 이른다.

 

남원장날의 함성, 그리고 순국

이석기 덕과면장이 주도한 만세운동은 이제 덕과면에서 남원읍내로 이어진다. 덕과에서 만세운동이 있었던 다음날인 4월 4일은 남원 장날이었다.

이 날 만세운동에는 방극용이 있었다. 장날을 맞이해 읍내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방극용은 장을 보고 돌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잠시 후 조선 독립을 위한 만세 운동이 벌어지니 꼭 참석하라고 독려하며 장을 누볐다.

그리고 정오가 되자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행진을 전개해갔다.

그리고 방극용은 가장 앞장서서 만세를 불렀다.

전날 있었던 만세운동으로 인해 헌병과 수비대의 병력을 증원 받아 경계를 펴고 있던 일군경은 이동하던 군민들 앞에 도열했다.

그리고는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만세를 외치던 남원 군민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가장 앞에 있었던 방극용은 결국 총탄에 스러져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남원 3.1운동의 첫 번째 순국자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흐르는 남원의 항일정신

남원을 비롯한 전국에서 계속되었던 3.1운동은 이윽고 국외로까지 번져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에 만주를 비롯해 한반도 곳곳에서 벌어졌던 무장투쟁의 근간이 되었다.

남원의 항일정신은 1960년 3.15부정선거에 항의해 분연하게 일어섰던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 열사로 이어져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큰 족적을 남겼다.

모두가 숨죽여 있을 때 분연히 일어나 앞장섰던 이석기, 방극용 두 사람에게는 해방 후 훈장이 추서되었다.

일제의 총탄에 희생된 방극용은 1991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 덕과에서 남원 최초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석기에게는 같은 해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돼 넋을 기렸다.

또한 남원시에서는 매년 3월 1일 이들의 의거를 추모하기 위해 덕과면 동해골 삼일운동기념탑 아래서 기념식과 함께 이 날의 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근간에는 남원에서 있었던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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