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역사의 부침에도 굳건한 천혜의 요새

<29.남원 교룡산성 둘레길>둘레 3120m 높이 4.5m '위용' 동학농민운동땐 집강소 설치 전라좌도 통솔 김수현 기자l승인2018.09.03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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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룡산성 둘레길은 교룡산성 아래 쪽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8.3km의 순환형 도보길이다

 남원 서북쪽(산곡동)에 우뚝 솟은 교룡산을 에둘러 싸고 있는 교룡산성은 수많은 역사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그 형태가 잘 남아 있어 한국 성곽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973년 전라북도기념물 제9호로 지정된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인 교룡산의 험준함에 의지하여 축조된 석축산성(石築山城)으로 그 둘레가 3,120m에 달하고 높이는 약 4.5m에 이른다.
 산성 바로 아래 주차장에서 성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ㄱ자형으로 꺾인 곳에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인 ‘홍예문’이 있다. 교룡산성에는 동서남북으로 4개의 출입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문에 해당하는 홍예문만 남아 있다.

 문 양 측면을 장대석으로 3단으로 쌓은 뒤, 그 위 평평한 곳에 아홉 개의 돌을 아치형으로 짜 맞추어 놓았는데, 한 눈에 딱 봐도 그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성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산성 중수비와 교룡산성을 지켰던 역대 무관 별장들의 기적비(紀績碑)들이 줄을 지어 교룡산성의 역사를 말없이 말해주며 서있다.
 교룡산은 북쪽의 주봉인 밀덕봉과 남쪽의 복덕봉이 가파르고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며 이두봉우리가 분지 지형인 남원을 감싸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또한,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계곡과 우물이 99개가 있어 전쟁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대피하여 적에 맞설 수 있는 천혜의 요새 역할도 했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도호부 관내 ‘운봉, 장수, 임실, 구례, 곡성, 담양, 옥과’ 등의 양곡을 거두어 교룡산성에 보관했다고 전한다. 이처럼 교룡산성은 남원 백성들의 최후의 보루였다. 홍예문을 지나 돌계단을 딛고 300m 가량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선국사라는 고찰을 만난다.

  선국사는 신라 신문왕 5년(685)에 창건했다고 전해오는데, 당시 절 근처에 용천이라는 샘이 있어서 절 이름을 용천사라 불렸다고 한다. 그 후 교룡산성을 쌓은 뒤 절의 성격이 호국도량으로 바뀌면서 이름도 선국사로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선국사가 한창 부흥했던 시절에는 승려들만 300여명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대웅전과 칠성각?요사채?보제루  만 남아 있어 쇠락한 느낌이다.

선국사는 동학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62년. 농민항쟁 때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는 영남 지방에 만연한 사상의 보수성과 온갖 형태의 박해를 피해 경주에서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한다.
  그는 남원성 남문 밖의 한 주막에서 서공서를 만나 그의 소개로 교룡산성 안에 있는 선국사의 작은 암자 덕밀암에 거처하게 된다.

 최제우는 덕밀암에 은적암이라는 당호를 붙이고 8개월여 동안 은거하면서, 동학을 밝히는 ‘논학문’ 등을 집필하게 된다. 최제우는 결국 1864년 체포됐고, 대구 장대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이런 최제우의 동학사상이 갑오년(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운명인지 우연인지 동학농민운동가 김개남은 갑오년에 이곳 교룡산성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전라좌도를 통솔하게 된다.

 교룡산성 둘레길은 둥글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중간 중간에 마을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딱히 어디가 시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개 교룡산국민관광지 주차장을 시작점으로 꼽는다. 양쪽 방향 어디에서 시작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출발해도 되지만, 교룡산성둘레길 안내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오는 것이 그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것보다는 다소 수월하다.
 또한, 고도차가 거의 없이 평탄하여 연령대와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걸어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구간이 울창한 숲길로 되어 있어 한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

교룡산성 둘레길은 남원시민들에게는 보석같은 존재다. 교룡산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한꺼번에 담아내는 남원의 진정한 생태역사탐방로인 교룡산을 거닐며 남원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김수현 기자  ksh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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