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수도승’의 꿈

2. 미나리농장 외국인 노동자들의 애환<하> 장태엽 기자l승인2020.02.11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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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라싹(오른쪽)씨와 동료들이 “사랑해요” 라고 말하며 손하트를 보여주고 있다.
   
▲ 일과를 마치고 서로 어깨를 주물러 주며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풀어주고 있다.
   
▲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미나리꽝과 비닐하우스 작업장을 오가며 하루일과를 마친다.
   
▲ 위라싹이 들어와야지만 미나리를 다듬는 비닐하우스 작업장이 돌아간다.
   
▲ 서리가 내린 어느 겨울아침, 물속을 걷는 태국인 노동자의 고요한 움직임이 비밀작적에 임하는 군인을 연상케한다.
   
▲ 분주한 손놀림에 파릇파릇한 미나리 더미가 하나 둘 떠오르며 징검다리처럼 수면을 덮고 있다.
   
▲ 안개가 자욱한 미나리꽝에서 위라싹씨와 태국인 동료가 미나리를 가득 실은 스티로폼을 옮기고 있다.
     
 

고향 태국에 사는 가족을 위해서다. 축축한 땅에서만 자랄 수 있는 미나리처럼 위라싹(37세)씨는 올해 들어 가장 차가웠던 영하5도의 날씨에도 찬 물에 몸을 던져야지만 돈을 번다.

겨울의 새벽 추위. 흡사 송곳으로 후려 파듯 뼛속까지 시리게 한다. 이불속에 있을 아침 6시에 차디찬 미나리꽝에 몸을 담가야만 위라싹(37) 씨의 꿈은 이루어진다.
한국에 온지 어언 5년 6개월째. 태국인 위라싹 씨는 아직도 추위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 말한다.
 전주시 전미동의 한 미나리농장, 그는 오늘도 이른 새벽에 수도승처럼 초록빛 미나리 수레를 밀며 고향을 생각한다. 아아, 꿈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나의 부모님. 한 살 터울의 두 딸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된 작업이 반복되며 어느새 미나리는 징검다리처럼 수면을 덮어간다.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4년9개월이다. 그는 한국에 머물며 제법 까다로운 ‘성실근로자’ 요건을 충족, 한국 체류 연장 기회를 얻었다. 작년 4월에 첫 기간을 채워 비자 연장을 위해 태국으로 돌아가 3개월 머물다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몸은 천근만근이라도 목돈을 만지는 데 한국생활이 최고임을 깨달은 그는 이번 재입국 시 아예 조카까지 데리고 왔다.
 “삐야랏(조카), 함께 있어요. 둘이 있어 좋아요...”
 전주 전미동에 들어와 있는 태국인은 대략 40명 정도 된다. 위라싹 씨처럼 주로 미나리농장에서 일을 하는 데, 쉬는 날에는 함께 모여 고향음식도 만들어 먹고 인근 슈퍼에서 장을 보며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랜단다. 격무를 마친 후엔 휴식처에서 서로 등을 주물러 주는 고향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큰 낙이다.
 70, 80년대 중동근무에 나섰던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이들 외국인 근로자는 월급의 상당액을 가족에게 송금한다. 태국인 근로자 7명의 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위라싹 씨도 240만원의 월급여 중에서 170만~180만원을 고향에 보내주고 있다.
 요즘 위라싹 씨는 짬이 날 때마다 한국 문화를 배우곤 한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모아 하트를 만들고 “싸랑해요~”라고 말하는 그와 두 친구들의 미소에서 외국인의 설움은 찾을 수 없다. 그의 꿈은 돈을 모아 고향에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이다. 4년 정도 더 일하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며 어둠이 짙게 깔린 밤하늘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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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산 정상에서 나오는 잠깐의 만족이 아니다.
그것은 산을 오르는 길에서 느끼는 희망이다.
행복은 희망에서 나온다.
지금 걷는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희망이 있다면 불행하지 않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조던 피터슨’의 저서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


글·사진/장태엽기자·mode70@


장태엽 기자  mode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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