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깨끗한 술맛을 결정짓는 건 맑은 물로 술을 지었는지 여부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입에 착 감기는 생막걸리를 위해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천년주가.
이미 신선한 맛과 향을 인정받아 거의 모든 전주 막걸리집에 유통되는 기적을 일구기도 했다.
살아 숨쉬는 생막걸리 처럼 생생하게 살아온 김영광 천년주가 대표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김영광 대표를 만나기 전에 사전조사를 하려 했지만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도 영 찾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주류업계는 특성상 업계경쟁이 매우 치열한 편이라 대표가 홍보에 적극 나서는 일은 드물다"며 이유를 밝혔다.
자기 자신을 홍보하는 일엔 인색하고 수줍음이 많은 그이지만 자신이 빚어내 세상에 내놓은 제품을 얘기할 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년 전 주류도매업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김 대표는 제대로 된 술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10년 전 남원 지리산 자락에 소담한 공장을 차리는 것을 시작으로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성실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정평이 난 그가 만든 생막걸리는 품질 면에선 나무랄 곳이 없었기 때문에 주류도매업으로 쌓아 온 기존의 도매처에 100% 납품할 수 있었다.
"처음엔 술이 아니라 음료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주류로 눈을 돌린건데 주류는 다른 음식과 함께 사업자로 낼 수 없기에 생막걸리를 생산할 즈음부터는 음료사업엔 손을 뗏지요."
현재 매출액만 10억 원에 이를 정도로 빠른 성장속도를 보인 천년주가의 술은 이미 전주의 막걸리골목을 재패했다. 철저하게 맛으로만 승부를 본 결과였다.
처음부터 이렇게 달콤한 결과를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30대 초반. IMF의 먹구름은 김 대표의 직장생활을 어둠으로 뒤덮었다.
"안정적인 은행원 생활을 해오다가 30대 초반 맞이한 명예퇴직은 걱정 뿐이었다"는 그는 "처음엔 모두가 우려했지만 지금은 그때 회사를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당시 회사에서 버티던 친구들이 4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정리해고 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젊은 시절 다른 길을 생각할 기회가 있던 것이 오히려 행운이었다는 마음이다.
천년주가의 주력제품은 막걸리다. 특히 웰빙 흐름을 타고 있는 요즘의 추세와 잘 맞아 떨어지는 막걸리는 그야말로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천년주가에서 다루는 제품 종류만 해도 40여 가지에 달한다. 전북 뿐 아니라 전국으로 납품되는 제품들이다.
막걸리만 28가지 종류에 이르며 맥주도 5가지 정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요즘은 기능성 막걸리에 주목하고 있다는 김 대표는 제주도에서 직접 공수한 한라봉으로 만든 한라봉 막걸리와 우도의 땅콩을 원료로 한 우도땅콩 막걸리, 빛깔이 예쁜 산수유주를 대표 품목으로 열거했다.
"이제는 쌀 막걸리로는 매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재료를 산지에서 직송받아 물 맑은 남원에서 막걸리를 만들어보니 맛부터 다르더군요."
막걸리는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술이라 사람들이 흔히 예상하기 어렵지만, 막걸리만큼 까다로운 제조과정을 거치는 술도 드물다.
특히 효모의 역할이 술맛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막걸리는 결국 효모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루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난다.
판매흐름도 매우 복잡하다는 김 대표는 "막걸리는 흔히 생막걸리와 살균탁주로 나뉘는데 살균탁주 역시 생(효모)이 맛있어야 살균을 해서도 맛이 균질해지는 탓에 결국은 효모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생막걸리는 효모가 들어있는 특성상 유통기한은 한달 이내로 매우 짧지만, 그만큼 독특한 맛을 자랑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균'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김 대표는 그같은 여유를 가지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공부와 실전을 통해 최적의 맛을 찾아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지금 위치한 지리산 아래 공장은 술을 만들기엔 최적의 장소지만 그만큼 관리와 검사가 까다롭기 때문에 폐수가 나온다는 등 작은 실수라도 발견되면 그날로 공장문을 닫아야 한다.
그런 위험을 알고 있기에 김 대표는 깨끗한 공장 관리와 엄격한 생산 품질 유지를 게을리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가장 힘든게 무엇이냐는 질문엔 주저없이 '영업'을 꼽았다.
아무리 잘 만든 술이라도 사람들에게 소비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는 걸 납품업을 하면서 배운 탓이다.
"기존 시장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일은 정말 힘들다"는 김 대표는 "워낙 막걸리라는 주종이 지역색을 타는 주류이다 보니 대부분 그 지역 사람들은 맛이 있건 없건 그 지역 제품을 먹는 것이 관례였는데 '맛'을 무기로 천천히 넓혀가면서 가능성을 엿봤다"고 말했다.
또한 시기적으로 소비자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지역제품 선택에서 맛을 보고 평가하는 흐름으로 바뀌면서 천년주가의 막걸리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다.
소비자들이 현명해지고 깐깐해지니 제품도 대충 만들어서는 될 턱이 없었다. 원부자재를 하나 고르더라도 더욱 까다롭게 고르고 과정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제는 식약청 관할로 넘어가서 제품 관리와 청결까지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다"는 김 대표는 "이제 이러한 지침을 따라가지 못하는 양조장은 도태할 수 밖에 없는데 특히 해썹(HACCP) 의무 인증이 전 품목에 적용되는 시점에는 전체 양조장의 40% 이상은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깐깐한 관리로 자신을 혹사시켜 가면서 공장을 운영해 온 김 대표에겐 오히려 이러한 상황이 달갑다. 진검승부를 펼칠 수 있으리란 기대감 때문이다.
"내년부턴 술병도 무색병으로 바꿔야 하는데 품질에 자신이 없는 업체들에겐 무색병 판매가 두렵겠지만 우리는 이제서야 품질로 제대로 된 승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해요."
모범생처럼 회사 생활을 하다 우울했던 시대를 거쳐 지금의 안정적인 기반을 다진 김 대표에게는 더 큰 꿈이 있다. 천년주가가 이름 처럼 천년의 세월 동안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것이다.
"이제서야 설비를 온전히 갖추고 다가올 주류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기분이다"고 말하는 김 대표는 "이제는 한국의 기후상황도 달라지면서 주조 시스템도 달라져야 하는데 그럴수록 기본 구조를 알고 제대로 적용해야 술 맛을 지키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맞서 격량을 끌어안은 김영광 대표가 빚어내는 술 맛은 안 봐도 감칠맛이 입안에 도는 기분이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구매문의: 063-635-0168, 남원지리산허브영농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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