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판본은 전라도의 수도였던 전주에서 발간한 옛 책과 그 판본을 말한다. 조선시대 목판인쇄는 서울의 경판과 안성의 안성판, 그리고 대구의 달성판, 전주의 완판본이 있었는데, 그 판본의 규모나 종류에서 전주 완판본이 엄지손가락이었다.

특히 완판본은 16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 출판문화를 보급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는데, 주로 중앙관서나 감영, 향교, 서원 등의 책의 간행을 주관하였다. 또한 상업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출판된 완판 방각본은 전국적인 공급망을 갖추고 있어 서울의 경판과 경재할 정도였다. 이처럼 완판본이 성행한 이유는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하랬던 전라감영에서 출판물이 만이 제작되고 책 제작을 위한 한지가 대량으로 생산되었으며, 판소리의 소설화와 한글소설을 통한 대중화 교육등 근현대사 지식들의 지적 요구가 증가하는 문화적 배경이 있었다.

물론 경기도 안성에서 발간한 옛 책은 안성판이라 한다. 대구감영을 중심으로 찍은 달성판은 서원을 중심으로 유교적 내용의 책이 주로 발행되었다. 경판본은 경기도 안성판이 1780년에 임경업전을 출판하였고, 서울에서는 1792년 장경전을 찍었다. 이로부터 약 70여 종의 소설이 서울과 경기에서 출판되었다. 완판본과 비교하면 경판본의 발간 시기가 약 40년 정도 앞선다.

전주의 완판본은 구운몽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해서체로 되어 있다. 이는 완벽하게 반듯이 쓴 정자체를 말한다. 정자로 글자를 새긴 이유는 소설 한권을 다 읽으면서 우리 한글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목적은 한문소설과는 다르게 단순한 소설을 발간한 것이 아니라 한글교육을 위해 발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글고전소설 언삼국지의 첫 쪽에 ‘가갸거겨’로 시작하는 자모음표인 반절표가 붙어 있다.

또한 한글고전소설의 경우, 완판본은 84장본이 많은 반면에 경판본은 20장에서 30장본이 대부분이다. 경제적 수지를 맞추기 위한 출판이었지만 한지의 발달이 소설의 분량을 늘이는 계기가 되었다. 완판본 출판 문화의 활발했던 요인으로 전주의 오랜 학문적 전통이 있었다. 특히 조선의 기원이자 전라도의 중심이었던 전주는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모색하려는 유교적 전통과 자부심이 강했다.

20세기 전후 전주 출신 유학자였던 간재 전우(1841~1921)를 중심으로 모인 선비들은 유학(성리학)을 통한 굳센 정신세계를 보여주었다. 전라감영에서는 중앙정부의 요청으로 사대부 취향의 도서인 완영판 책이 만들어지게 된다. 전라감영에서 지속적으로 발행한 책으로는 정치, 역사, 제도, 사회, 어학, 문학, 유학에 관한 60여 종류에 이른다.

전라도 지방교육의 중심지였던 전주향교는 당시 전라감영에서 책을 출판할 때 사용한 목판 5,059개가 최근까지 보관해 왔고, 현재는 전북대박물관에 위탁·보관되고 있다. 전라감영에서 편찬한 책들은 주로 왕권의 강화, 유교 이념의 확립, 문화의 창달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전라감영의 활발한 편찬 사업은 인쇄술의 발달과 학문의 보급을 촉진시켰다. 특히 전라도 중심인 전주는 상인들에 의해 판매용 책인 ‘방각본’이 발간되면서 많은 책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완판본의 특징은 전라도 방언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완판본 한글소설은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전라도의 방언 현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또한 전라도에서 발생한 판소리 사설에 나타나는 전라 방언은 18세기 언어를 보여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여기에 전주에서는 일상적인 삶에 필요한 기초적 한자나 편지쓰기, 문서작성 등 실생활에서 필요한 책들이 많이 발간되었다. 한자 학습을 위한 천자문, 상을 당했을 때 예를 갖추는 상례유초 등은 모두 전주에서 발간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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