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봐. 아직도 물이 이렇게 찍찍 나와서 이불 깔고 잘 수도 없는데 명절은 무슨 명절이야”.

지난달 섬진강 제방 붕괴부터 한 달이 지났다. 추석이 3주 앞으로까지 바짝 다가왔지만, 남원시 금지면 이재민들에게는 남의 일이나 마찬가지다. 침수 피해가 할퀴고 간 몸과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1일 찾은 남원 금지면 하도마을. 가장 늦게 물이 빠진 곳 중 하나인 이곳에는 아직도 집을 고치며 나온 듯한 나무판자 따위가 쌓여있었다. 비닐도 다 벗겨진 채 잡풀이 자란 하우스의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겨 쌓여있던 가구들은 전부 치워졌지만, 집들 대부분은 아직까지 문조차 닫아두지 못한 상황이었다.

막 빨랫줄을 정리하던 방모(84)할머니는 다시 비가 내리는 하늘을 보며 “이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고 했다. 방 할머니의 집안은 폭우 피해가 있은 지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도배도, 장판도 깔지 못한 채 시멘트가 고스란히 드러난 채였다. 싱크대 등을 들어낸 흔적이 역력한 집안 모습이 을씨년스러웠다. 물이 휩쓸고 가 바닥과 벽을 할 것 없이 금이 갔고, 구석 한 켠에는 잠잘 때에만 꺼내 깐다는 종이 박스와 모기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럼 이불은 깔고 주무시냐?’고 묻자 ‘이불을 깔고 자려다 전부 젖어버려서 그냥 상자만 깔아. 파리나마 막으려 모기장을 친 채 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갈라진 틈마다 배어나온 물기를 매만지면 방 할머니의 입가에도 한숨이 마르지 않았다. 문이 활짝 열린 집안 곳곳에서 선풍기 네 대가 하루 종일 돌아가고 있었지만, 물기는 가실 기미가 없었다. 보일러를 돌려 말리고 있었지만 기름이 다해 잠시 멈춰둔 참이라는 게 방 할머니의 설명이다.

그는 “추석은 무슨 추석이냐, 지금 집안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도 걱정이 태산”이라며 “일단 방이 말라야 장판이든 벽지든 할 텐데, 이렇게 비가 오니 뭘 할 수도 없고 적적해 저것들이나마 터뜨리고 있으려고 가져왔다”며 처마 아래 세워진 유모차를 가리켰다.

그러면서 “물은 물대로 차고, 벌레는 벌레대로 꾀이고, 고통스러워 죽겄어, 뭘 어쩔지 엄두도 나질 않어”라고 덧붙였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임모(47)씨는 아직까지 금지문화누리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 폭우로 화장실이 완전히 무너지고 집 안에 악취가 풍기는 등 곤란을 겪으면서다.

실제 방문한 임 씨의 집안에는 보일러가 끊임없이 돌아가며 방 안을 말리고 있었다. 방 안에서 배어나온 습기로 흡사 사우나 같은 공기가 가득 찼다. 마당에는 흙을 잔뜩 뒤집어썼지만 아직 쓸 수 있는 가재도구들이 간신히 수습돼 있었다. 본래 하우스에서 상추 농사를 짓고 있던 임 씨는 이번 겨울 수입이 전혀 없을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라고 토로했다.

임 씨는 “보일러를 24시간 계속해서 돌린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됐다. 15일만 때도 400여 리터가 들어가는데, 연료 값만 해도 상당히 부담이 된다”며 “각종 오물이며 기름 등이 물에 섞인 채 휩쓸고 가 주민들은 행여 피부병이라도 걸릴까 걱정이 크다”고 한숨지었다.

그는 “비가 계속되며 벽 등이 마르지도 않고, 일할 때에 급하게 필요한 화장실만 간신히 복구를 마쳤는데, 추석까지는 그래도 어떻게든 복구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지만 다음 주 말이면 임시대피소 식사 지원도 끝이라고 해 막막하다”고 한숨지었다.

임 씨처럼 아직까지 임시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은 11일 기준 총 25명이 있다.

금지면 관계자는 “집이 다 무너져 새로 지어야 하는 분이나, 집 안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기엔 다소 위험한 어르신 등이 아직까지 남아계신다”며 “이번 주까지는 다들 들어가실 수 있지 않으실까 했는데, 비가 계속되면서 복구가 더뎌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김수현 기자·ryud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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