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13대 왕인 근초고왕은 해상왕 혹은 정복군주로 불린다. 그가 백제를 통치하던 4세기는 백제의 최전성기였다. 그는 막강한 군대와 해군력을 앞세워 한반도는 물론 중국과 일본에까지 진출했다. 우선 그는 서남해 해상통제권을 쥔 가야를 복속시켰다. 이는 중요한 해상진출 통로를 확보한 쾌거였다. 또 고구려에 대한 원정도 감행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넓은 땅을 차지했다.
  그뿐 아니다. 아직 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중국에 진출한 것도 근초고왕의 업적이다. 전해지는 사료에 의하면 당시 백제는 요서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영토를 가졌다는 것이다. 송서와 양서 등 중국 측 사료는 백제가 요서와 진평, 하북, 산동 등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일본에는 분국 그러니까 속국을 설치했다. 나아가 백제는 앞선 조선과 항해술을 무기로 멀리 인도와 동남아시아까지 해상 교역 길을 개척한 것으로 돼 있다.
  결국 백제는 동아시아는 물론 남아시아까지 힘을 뻗은 대 해상왕국이었다는 것이다. 재야 사학자 김성호 박사는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이라는 책에서 광대한 영역에 걸친 백제의 해상활동을 소상히 분석하고 있다. 또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의 역대 왕조 가운데 바다 건너 영토를 둔 왕조는 백제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단재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민족사관에 입각하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백제가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해상왕국임을 주장했다.
  지난 4일 유네스코는 공주와 부여, 익산에 산재한 8곳의 백제유적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8곳은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을 비롯해 부여 정림사지, 나성, 관북리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그리고 익산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등이다. 유네스코는 그 이유로 당시 백제문화가 독창성과 수월성 면에서 돋보였고 중국과 일본 등 고대 동아시아 왕조와의 상호 교류 중심이었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 우리 역사에서 백제사의 위상은 초라하다. 찬란한 문화와 강한 국력을 떨쳤던 백제가 후세 역사가들의 왜곡으로 어둠에 묻히고 만 것이다. 그래서 백제사를 ‘잃어버린 왕국’ 혹은 ‘대륙의 한’ 등으로 부른다. 단재 선생은 이에 대해 “후에 일어난 왕조가 앞 왕조를 미워하여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파괴하고 불살라 없애버렸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대표적 예다. 이제 백제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새로이 정립돼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바로잡고 나아가 민족 정통성을 확립하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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