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수께끼는 문화유적 곳곳에 남아있다. 과학으로 풀지 못하는 문화유산이 전라북도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 전라북도를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말한다. 그 중 단연 문화유산의 보고로 칭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고창 고인돌유적이다. 유네스코로부터 강원도 강화, 전라남도 화순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다. 고인돌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고창의 문화콘텐츠가 고인돌 유적지다.고창군 일대에 분포된 고인돌 유적지는 살아있는 노천 박물관이다. 화려한 장식도 없이 넓은 들판에 앉아 있는 모습은 단연 압권이다. 세상에서 이
완판본은 전라도의 수도였던 전주에서 발간한 옛 책과 그 판본을 말한다. 조선시대 목판인쇄는 서울의 경판과 안성의 안성판, 그리고 대구의 달성판, 전주의 완판본이 있었는데, 그 판본의 규모나 종류에서 전주 완판본이 엄지손가락이었다.특히 완판본은 16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 출판문화를 보급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는데, 주로 중앙관서나 감영, 향교, 서원 등의 책의 간행을 주관하였다. 또한 상업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출판된 완판 방각본은 전국적인 공급망을 갖추고 있어 서울의 경판과 경재할 정도였다. 이처럼 완판본이 성행한 이유는 전라도와 제
■문화아이콘- 전주 한지한지의 으뜸인 전주한지. 예로부터 한 장의 한지를 만들려면 사람의 손이 아홉 번 가고, 사용하는 사람의 손이 백번째 간다하여 일백자를 써서 백지라고 하였다. 그만큼 한지를 만드는 일이 힘들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정성을 밑바탕으로 한 한지의 정통성은 전주가 중심부를 이룬다.인류사회에 있어서 문화의 발달은 종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우리나라의 종이인 한지는 예로부터 주변국가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닥'을 주원료로 하여 만들었기에 순우리말로 '
농악은 공동체의 구심점지난 해 말,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제9차 무형유산위원회는 우리나라 농악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우리의 ‘농악(農樂)’을 그 이름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다만 음악적 가치의 측면만 본 것이 아니다.농악은 우리 삶에서 다양한 형태와 목적으로 공연되어 왔으며, 이를 통해 공연자와 참가자들에게 동공체의 정체성을 부여해 왔다. 음악뿐만 아니라, 춤과 놀이를 포함하는 종합공연예술로서 오랜 동안 우리 민중과 가장 가깝게 있으면서 ‘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해 온 것이다.신명을 이끄는
얼마 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3D’를 검색한 적이 있다. 당연히 ‘3D 영화’가 검색 순위 1위일 줄 알았다. 하지만 검색 순위 맨 위에 있는 것은 ‘3D 프린터’였다. 3D 프린터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인터넷 이상의 기술혁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었다. 신기술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도 그 만큼 빠르다.인터넷이나 신문, 매스미디어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단어들이 또 있다. 문화, 유산, 전통 등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문화, 유산, 전통 등이 자주 얘
익산의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가 지난 7월4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결정되었다. 익산의 2개 유적과 함께 공주의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의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고분군 등 8개 유적을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등재 되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 왕도를 주제로 왕궁과 사찰, 방어시설, 왕릉 등의 유적으로 구성되었다. 사실 세계유산 등재 소식을 접할 당시에는 등재가 되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를 느낌은 읒� 않았다. 그렇지만 길거리에 현수막과
전라북도에 살면서도 부안에 고려청자가 있었나? 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부안지역은 전남 강진과 쌍벽을 이루며 고려청자의 메카였던 곳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고, 전문 연구자도 매우 빈약한 상태라 인식하는 사람들이 극소수이다. 부안 고려청자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일본인학자 노모리 켄(야수건野守健)에 의해 최초로 발견?조사되었으며, 당시 강진에 버금가는 가마터라고 학계에 보고되었다. 1938년 유천리 12호 청자가마터에서는 비색청자?상감청자?무문백자?상감백자와 함께 동화청자가 혼재된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384년(침류왕 1년) 인도의 승려인 마라난타가 진(晉)나라에서 오면서 이때부터 불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백제사회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수용되는 시기는 성왕(523-553년)에서 무왕(600-641년)에 이르는 약 100년간의 일이라고 한다. 백제의 불교문화는 중국, 고구려로부터 수용하고 신라, 일본으로 전수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데, 백제 불교문화의 정점에 있었던 곳이 익산 미륵사였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600-641)대에 창건되어 조선시대 17세기를 전후하여 화재로 폐사 될때까지 1,000여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