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공식적으로는 다문화주의를 채택한 나라다. 대영제국 시절부터 워낙 많은 외국인들이 영국으로 유입되는 데서 나온 고육지책의 느낌이 강하다. 사실 엘리자베스 여왕 치세 때부터 외국인들은 차별을 받았다.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처럼 당시 해외 특히 식민지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들어왔다. 영국 왕은 이들 가운데 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추방령을 내릴 수 있었고 외국인들에게 선거권, 재산, 소매업에 대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았다.

현대에 와서도 외국인 특히 유색 인종에 대한 적대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1958년 런던에서는 젊은 영국인이 서인도 사람과 결혼한 스웨덴 여성을 공격하면서 폭동이 일어났다. 수백명의 백인 폭도들은 서인도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가를 공격했다. 이 인종 폭동은 결국 인종차별 철폐를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여론을 일으켰고 1965년 미국에 이어 영국도 인종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법이 제정됐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고질적인 이민족 혐오증은 현대에도 온존하고 있다. 영국인 상당수는 400만명에 달하는 자국내 외국인들의 영국 정체성을 위협하며,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궁극적으로 유색인종들은 영국인들에 비해 열등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혐오증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정치인은 마가렛 대처 전 총리다. 그는 전형적 보수주의자였는데 베트남 이민자를 보트 피플이라며 조롱했고 흑인 인권 운동가인 남아공 만델라를 향해서는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국 영화분류위원회가 지난달 미국 영화 메리 포핀스의 시청 연령 등급을 60년 만에 상향 조정했다. 전체 관람가에서 8세 미만 아동의 경우 보호자 지도 요구 등급으로 바꾼 것이다. 이 영화가 남미 원주민을 비하하는 단어를 쓰고, 얼굴을 까맣게 칠한 백인 배우가 출연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마디로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아이들이 차별적 언어나 행동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잠재적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시청 등급 상향 이유를 밝혔다.

영국의 인종차별금지는 이렇게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다. 1976년 설립된 인종평등위원회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이 위원회는 설립 이래 꾸준히 영국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다문화주의를 인식하고 행동에 옮기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이주민에 대한 지원정책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지금도 유색 인종들은 영국 내에서 가난과 차별에 시달린다고 호소한다. 영국 내 흑인이나 무슬림들은 정부가 너그럽게 대해주는 관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인정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아마도 영국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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