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가족 형태는 4인 가족이었다. 부부와 미혼 자녀 둘이 그 전형이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에서 보듯 정부가 가족계획을 통해 부부가 자녀 둘을 두는 것을 장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핵가족 시대의 보편적인 가족 형태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핵가족마저 파편화되기 시작해다. 1인 가구와 동거 가구가 급증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 가족제도는 대대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1975년 가족 평균 인원수는 4.64명이었다. 핵가족 개념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2010년 전국 가구 평균 크기는 2.69명으로 감소했다. 핵가족이 다시 분열한 때문이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2인 이하 가구는 전체의 58.1%에 달했다. 1인이나 아니면 부부만 가족을 이루고 사는 식이다. 또 한부모 가족이나 복합 가족이라는 형태도 많이 늘어났다. 부부의 이혼과 재혼이 급증하고 비혼 출산도 흔한 경우가 되면서 이렇게 가족 형태가 다양화된 것이다.

예컨대 수년전 방송인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은 전통적 가족 개념으로 보면 기이할 정도다. 그는 미혼인 상태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았다. 전형적인 비혼 출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공수정 시술은 법적으로 부부에게만 허용되는 만큼 과연 이런 형태의 가족을 법적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아동 학대 등으로 인해 꾸려진 위탁 가족, 생계를 같이 하는 노년 동거 남녀, 동성 부부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다양한 가족 형태가 현실화하는 추세다.

이렇게 되자 가족의 소중함과 같은 전통적 윤리들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23청소년 가치관 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전체 응답자의 29.5%에 불과했다. 201273.2%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남녀는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동성결혼을 허용해야 한다에 동의한 응답자는 각각 81.3%, 52.0%나 됐다. 이어 결혼하면 자녀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도 19.8%에 그쳤다.

충격적인 결혼관이다. 이 조사 대상은 초··고교생 7718명이었다. 앞으로 우리나라 결혼과 가족제도가 얼마나 많이 바뀔지 시사하는 조사결과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법이나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독신이나 동거, 비혼모, 동성 부부 등은 아직도 사회적 편견이나 몰이해에다 제도 미비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다. 프랑스나 영국, 스웨덴 등은 혼인이나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 아니어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가족의 범위를 넓히고 포용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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