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에 나오는 새싹과 봄부터 가을까지 차례차례 피는 꽃을 들여다보는 재미로, 한 해가 금방 지나간다. 또 겨울은 겨울대로 빈 마당에서 잠시 쉼을 생각하며 다시 올 새봄을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을 나도 함께 통과한다. 침묵의 시간은 사람이든 나무든 깊어지기에 좋은 시간이다. 잠시 성장을 멈춘 것 같지만 뿌리는 더 깊고 넓어진다. 12월과 1, 쉼의 시간을 지나면 2월부터는 벌써 땅을 뚫고 새싹이 올라오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의 꽃눈도 발갛게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꽃을 보여줄 태세다. 마당은 이렇게 같은 자리에서 돌고 돈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내년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중에서)

나혜경 시인에게 있어 마당은 자연이 응축된 소우주이자 사색의 오솔길이다. 인생 반환점이라고 생각하는 시기에 그는 마당이 있는 집을 지었다. 어릴 적 살았던 집도 마당이 있었기에, 일종의 회귀 본능 같은 것일 터.

그는 어느 이른 봄날 향 좋은 히아신스가 꽃을 피우는데 불현듯 그림으로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꺼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싶을 때마다 집과 마당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하나씩 그려 나갔고, 그 느낌을 글로도 써내려갔다.

그에게 마당은 놀이터와도 같았다. 그곳에서 수를 놓고, 재봉질을 하고, 커피를 볶고, 목공을 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림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그의 첫 산문집 우리는 서로의 나이테를 그려주고 있다에는 삶을 마주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림은 서툴지만 전문가의 그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작가만의 풋풋한 색채가 돋보인다. 마당 구석구석 자리한 꽃 한 송이, 한 송이에 보내는 감탄과 찬사가 묻어난다.

나 작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앞마당과 뒷마당을 돌며 꽃과 나무에 눈을 맞추는데도 매번 새롭다. 마음이 헐렁하면 마당을 순례하는 시간도 잦다. 매일 달라지는 마당에서 새로움과 경이로움을 선물 받고 또 기다림을 배운다마당은 몸을 움직이게 하며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마당을 걸으며 덜컥덜컥 걸리는 감정도 삭인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기에도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김제 출신으로 1991년 사화집 개망초꽃 등허리에 상처 난 기다림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시집 담쟁이덩굴의 독법미스김라일락’, 시사진집 파리엔서 비를 만다면등이 있다. 현재 원광대에 출강하고 있다./정해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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