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리 내린 아침을 늦게 알아채도 허물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시로 공유되어지길 바랐다. 내가 지은 시를 이야기 라고 이름 지었다

김현조 작가는 최근 세 번째 시집 비사벌에는 달 냄새가 난다를 펴내며 이같이 말했다.

시인은 행간마다 계절이 지나가고 계절마다 철없는 아이처럼 시간이 뛰어갔다-이야기가 없는 길은 쓸쓸하다’(표제작 중 일부 발췌)며 삶의 자취들을 편편이 엮어냈다.

책에는 삶의 고통과 환희, 그리고 성찰에 대한 시인의 뜨거운 언어가 담겼다. 거기에는 삶의 숙명적 본질을 긍정하며 생명을 연민하고 자본주의에 침윤된 현대적 삶의 실상과 세상의 부조리와 비리를 고발하는 등 생태주의와 공동의 선()을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가 표출되어 있다.

작가는 기억 속 이야기를 하나둘 끄집어내 시로 옮겼다. 시를 씀으로써 자신의 인생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던 사람이나, 사물, 상황을 회상하게 되는데 이는 관조를 통한 인생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사람으로 태어나 중)’에서는 인간의 존재 자체와 처해 있는 현재 위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을 매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읽힌다.

그런가 하면 그는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감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조형해 내는 탁월한 이미지스트 시인이다. 단적인 예로 어린 고양이의 발자국에 정오가 흔들린다는 표현의 역동성과 감각적 묘사로 나른한 정오의 모습을 그린 다음, ‘나는 숨죽이고 등으로만 시간을 밀어낸다’(적막함 중)는 이를 확인케 한다.

특히 변화하는 계절의 정서를 그려내는 데 능숙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들이 보여주는 이미지 조형은 산뜻하면서도 깔끔한 멋이 있다. 이러한 역량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오랜 절차탁마의 시간이 있었으리라.

작가는 시 매미처럼 울었다에서 작가는 조바심 내지 않고 구월을 맞이해야지라고 스스로를 추스르며 머무는 것이 기적이 되도록존재의 충만한 순간을 위해 이야기 곳간을 비워두어야지라고 다짐한다. 그 순간을 위해 서두르지 말고 더디게 아주 더디게 가자라고 말이다.

정읍 출생으로 1991문학세계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사막풀’ ‘당나귀를 만난 목화밭’, 논저 고려인의 노래’ ‘고려인 이주사’, 번역서 이슬람의 현자 나스레진이 있다. 전라북도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전주문인협회 회장, ‘금요시담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정해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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