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훈(문화인류학 연구자)

음악평론가 전지영 선생의 글을 빌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많은 위대한 예술작품들과 예술가들은 체제에 순응하기보다는 폭력과 부조리에 저항하면서 탄생한다. 피카소가 그렇고 윤이상이 그러하며 일제강점기와 1970-80 저항문인들이 그렇다. 이것이 예술이 가지고 있는 양면성이다.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포용과 역량을 갖출 때 비로소 예술은 빛을 내지만, 아울러 그런 사회를 향한 과정에서 치열하게 저항하면서 예술이 발전하기도 한다.”

 

전지영 선생이 2004년에 발표한 평론 예술은 민주의 토양에서 자란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위대한 예술작품과 예술가들이 많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 요즘처럼 강하게 든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배우 류준열은 어찌 이리 안타깝게 되었는지. 감동 어리게 감상했던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의 지휘아래 그렇게도 열심히 목숨 걸고 싸웠건만, 자칫 그 영화는 이제 문제적 인물을 잘못 영웅시한 시대착오적 작품으로 전락될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최근 우연히 TV에서 일본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박열 선생에 관한 역사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영화 박열도 흥미롭게 본 적이 있어서 더욱 관심 있게 시청했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폭력과 부조리에 저항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살면서 그가 취한 태도였다.

폭력과 부조리의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입장에 설 수 있다. 저항할 수도 있고, 순응할 수 도 있으며, 저항과 순응 그 중간 어디쯤에서 괴로워할 수도 있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니 여러 가지 부족함 또는 부조리함을 보일 수는 있다. 다만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폭력과 불의에 맞서 저항하며 온 몸으로 맞선 사람에게 그저 순응했거나 중간 어디쯤에서 고민만 한 사람은 적어도 미안함을 인정해야 한다. 고마운 마음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지청천 장군, 이범석 장군, 이회영 선생. 2023년 독립국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예술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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