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검
이순신장검

흔히 날을 가진 날카로운 무기를 도검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도()와 검()은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양날이 있는 것을 검이라 부르고, 날이 한쪽에만 있는 것을 도 우리말로 칼이라고 구분한다. 모양도 조금 달라서 검은 직선인데 비해 칼은 곡선인 게 보통이다. 또 일각에서는 칼집이 있는 것을 검이라고, 칼집이 없는 것을 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칼과 검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

도검의 역사는 아주 길다. 석기시대 도검은 돌로 만들어졌지만 청동기 시대 이후 청동기와 철 등 금속제 칼이 주류를 이뤘다. 선사시대부터 칼이나 검은 필수적인 도구였다. 물건을 자르고, 의례에 쓰였으며, 심지어는 화폐로도 사용됐다. 그만큼 쓸모가 많았다는 이야기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검은 전쟁 무기로서 역할이 커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날의 칼이 전장에서 맹활약했다. 물론 검도 동원됐지만 내구도 등 여러 면에서 칼이 더 유용했다. 이름도 다양해졌다. 조선시대의 경우 인검류, 진검류, 운검류, 별운검류, 월도류, 협도류 등의 명칭이 나타난다.

여기서 인검류는 주술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검이며, 운검류는 무장이 왕을 호위할 때 지니던 검이다. 그 직책을 맡은 장수를 별운검이라고 불렀다. 월도류는 외날에 긴 자루를 가진 칼이며, 협도류는 무과시험에 쓰던 것으로 칼끝의 모양이 뒤로 제쳐진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도검은 변화를 겪었다. 초기의 도검은 그 길이가 짧았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본의 왜검에 대적하기 위해 그 길이가 길어졌다. 이후 구한말까지는 다시 짧아졌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구국영웅 이순신 장군의 장검이 두 점이 국보로 승격됐다. 이와 함께 칼의 이름도 원래 장도에서 장검으로 바뀌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름이 달라진 데 대해 충무공 칼들이 외날이어서 이런 날의 형태적 특성에 따라 이순신 장도로 썼으나, 이 칼들에 대해 세간에서는 장검으로 인식해온데다 고대로부터 도와 검을 혼용해서 사용했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사실 우리나라는 활의 나라다. 전장에서 맹위를 떨친 것은 백병전 때 휘두르던 도검 보다는 멀리서 날리는 활이었다. 그래서 조선 검술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다. 일본이 칼의 나라라고 불리는 것에 대비된다. 그러나 문헌에는 조선 검술이 본국검이라는 이름으로 전한다. 조선조 현종 때인 1673년 승정원일기부터 순조 때인 1820년까지 본국검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서 긴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을 한 것도 우리나라 검술의 존재를 잘 말해주는 장면이라고 할 것이다. 이순신 장검의 국보 지정을 계기로 조선검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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