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을 밟은 배우 최귀화’. 친한 지인의 영화 응원차 방문했다는 그는 영락없는 배우 포스를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 환호하는 팬들에 성큼성큼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하며 눈도장을 톡톡히 찍었다.

최귀화는 팔색조 매력을 가진 배우다. 드라마 미생부터 영화 범죄도시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연극무대에서 담금질하며 배우로서의 기본을 다졌다. 특히 노숙자나 형사 등 선 굵은 캐릭터는 그의 연기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배우 본연의 영역을 뛰어넘어 코리안 타임이라는 시나리오 집필로 또 다른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소감은.

전주와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16년 전 전주영화제 섹션 중에 꿈틀영화제가 있었다. 주로 학생들 단편영화를 선정해 소정의 상금과 상패를 줬다.당시 저 역시 대학생이었고, 같은 과 학생이었던 전성빈 감독이 연출하고 저도 출연한 작품 기억꿈틀영화제에 뽑혀 전주영화제에 잠시 다녀갔다. 벌써 16년이 다 되어간다.

이번 전주영화제에는 제 출연작이 있어서 오게 된 건 아니다. 중국에 친하게 지내는 배우가 투자·제작한 양쯔의 혼돈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동아시아 영화특별전에 초청돼 함께 영화제를 즐기러 왔다.

부담 없이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엔 몰랐던 관광 장소와 맛집, 먹거리를 찾아 신나게 즐겼다. 하하하. 그때도 콩나물국밥에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넣으며 ~~’하고 맛있게 먹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맛이 여전해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다.

연극·영화·드라마 배우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셨는데 애착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어느 한 분야를 콕 집기는 어렵다. 모두 너무 소중하고 매번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애착 가는 분야가 있는 건 아니다. 사랑하진 않으니까. 오히려 매 작품마다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애증의 관계랄까. 이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하하하

연극무대에 서지 않은 건 좀 됐다. 10년간을 무척 바쁘게 지냈다. 다시 재정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연극을 선택해 관객과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다. 물론 그 선택 역시 즐거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서겠지만. 제겐 언제부턴가 연기가 그런 존재가 돼버렸다.

시나리오 코리안 타임에 대한 집필 도전이 눈길을 끈다. 영화로도 만난다는데 소개를.

-시나리오 집필 계기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극단에 입단했다. 한창 연기에 관심이 있을 때라 많은 영감이 떠올랐다(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노트에 단편들을 써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익숙해졌다. 또 당시 극단에 쌓여있는 희곡집들을 읽고 있던 때라 본능적으로 글을 썼던 것 같다. 시나리오 작법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관련 수업을 수강하며 글쓰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랜 기간 꾸준히 써와서 제법 많은 습작품이 쌓였다. 비록 미완성인 체로 남아있지만 언젠간 세상에 꺼내 보이고 싶다.

-영화로 만들게 된 배경은

창작의 출발점은 희곡이었다. 연극에 빠져 있던 시절, 동료들과 즐겁게 무대에 올릴 희곡이 없을까 하는 궁리 끝에 직접 써보자 해서 첫 장편희곡을 완성하게 됐다그렇게 다 써놓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가 어느 날 시나리오로 다시 써봐야겠다고 생각해 그리했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마켓이라는 공모전 비슷한 것에 출품했는데, 이달의 우수상에 선정됐다.

영화제작사와 작가를 연결해 시나리오로 발전시켜가는 멘토링 사업에도 선정돼 수정·보완 작업을 했다. 또 묵혀놓고 있다가 2019년 코로나 시국에 다시 꺼내 전자·오디오북으로 출간하면서 영화 투자가 돼 극영화로 완성하게 됐다. 10년 걸렸다. 영화작업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꼈다.

-시나리오의 부제가 가족, 이 징글징글한...’ 이던데 본인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관습적인 의미에서 가족은 늘 화합과 연대를 연상케 하는 것 같다. 사회적으로 그걸 조장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고. 그래야 보기 좋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다툼과 배려의 연속이다. 누군가가 서열을 벗어나거나 순종적이지 않으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이걸 가부장적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 모두가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에 서로 응원하고 도와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배우들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참가할 수 있는 영화를 찍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감독이라는 일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제가 생각하는 감독이라는 위치는 단순히 작품을 잘 만들어내는 기술자가 아니다예술·인격 등의 소양을 잘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고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제가 생각하는 감독이라는 직함은 그렇기에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다. 아직 연기 하고 싶은 열정이 그보다 더 강하다.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정해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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