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심리학적으로 주목할만한 영화가 탄생했다. 바로 ‘가스등(Gaslight)’이다. 원래는 영국에서 1938년 연극으로 제작됐고 수년 후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품을 할리우드가 리메이크한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샤를르 보와이에가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해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의 어원이 된 작품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유명 성악가 앨리스 앨퀴스트가 살해당하고 그의 조카 폴라가 유산을 상속받는다. 이모를 살해한 범인인 그레고리는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폴라에게 접근한 뒤 결혼한다. 그는 속임수로 폴라를 정신병자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몰래 브로치를 훔치고 그림을 옮긴 뒤 아내가 이를 잃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한 것이라고 공격한다. 결국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 폴라는 점점 불안해지고 자신감을 잃어간다. 다만 그 상황서 경찰이 등장해 살해 직전의 폴라를 구해주고 그레고리 정체를 밝혀낸다.

  이 영화에서 그레고리가 한 행위가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그는 “당신은 건망증이 심하잖아‘, ’당신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등의 거짓말로 폴라를 흔들어놓는다. 결국 그레고리의 심리적 지배 술책에 넘어간 폴라는 정신병원에 가기 직전까지 간다. 이를 정리하면 가스라이팅이란 가해자가 거짓말과 속임수 등 조작수법으로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해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이것이 이슈가 된 예는 최근 남편을 살해한 이은혜 사건이다. 계곡살인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이은혜는 남편에 대해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 했다는 검찰 주장이 나왔다. 결국 남편은 자존감이 낮아지고 이은혜에 더욱 의지하게 되면서 그녀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사건을 수사할 때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가스라이팅 및 스토킹의 심리적 기제에 관한 비교‘논문에서 가정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경우 가스라이팅을 당한 피해자의 진정성이나 신빙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가스라이팅 자체에 대한 처벌 기준이 미비한 문제점도 논문은 지적했다.

  물론 가스라이팅은 아직 학문적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심리학 쪽에서는 ’세뇌‘나 ’예속화‘ 등의 기존 용어들을 선호한다. 아직 학술적 용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적 유행어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가스라이팅의 영향력이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비는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개인 차원서 자존감을 높이고 타인의 말을 맹신하지 않으며 논리적 추론 능력을 키우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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