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가 망국을 향해 치닫던 1902년12월3일(음력 11월4일) 오전 9시. 덕수궁 중화전에서는 성대한 잔치가 시작됐다. 궁중 잔치를 뜻하는 진연(進宴)이 벌어진 것이다. 조선조 마지막 궁중 잔치로 ‘임인진연’이라고 부른다. 고종황제와 황태자 그리고 문무백관들이 참석한 대연회였다. 나라가 망할 판에 무슨 잔치냐고 어이없을 법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우선 경사가 겹쳤다. 고종의 나이 51세로 망육순이라고 해서 축하받을 일이었다. 또 기로소에 들어간 해이고 즉위한 지 40주년이 되는 때이기도 했다. 아울러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터라 각국의 외교사절 앞에서 성대한 행사를 치러 황실 위신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래서 1년 전인 1901년11월 황태자는 고종황제에게 치사와 존호를 올리고 진연을 베풀겠다는 상소를 올렸다. 고종은 여러 차례 이를 거절하다가 결국 이날 잔치를 열게 된 것이다. 
  이날 진연은 문무백관이 참여하는 외진연이었다. 참여 인원만 1천700여 명에 달했다. 고종황제는 중화전에 나아가 축하를 받고 대사령을 반포함으로써 잔치는 막을 올렸다. 관명전에서는 진연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춤과 노래의 가짓수만 25종에 달했다. 이중에는 황태자가 지은 노래 가사 8편도 있었다.
  음식이 나왔는데 초호화 메뉴였다. 우선 황제에게 바쳐진 상차림을 보면 대탁찬안, 찬안, 별행과, 미수, 소선, 대선, 진탕, 진만두, 진염수, 진다 등 10 종류의 음식이 차려졌다. 이중 대탁찬안만 그 가짓수가 25가지였다. 찬안은 15가지, 별행과 15기, 미수는 9미에 각각 7그릇의 음식이 나왔다. 소선과 대선은 2가지씩이며 그밖에 진탕, 진만두, 진염수, 진다는 1그릇씩이었다. 상상컨대 당대의 고급 음식은 모두 등장한 셈이다.
  국립국악원은 오는 8월 12~14일 국립국악원 예약당 무대에서 임진진연을 재연한다고 발표했다. 120년 만의 재연이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궁중 잔치는 음악 · 의례 · 무용 등 그 시대 문화예술 중 가장 세련된 것들이 모이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봉래단 등 6개의 궁중 무용, 수제천 등 6개 궁중음악으로 구성됐다. 공연의 성격은 창작적 요소의 가미보다는 재현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임인진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 잔치에 대한제국 1년 예산의 9%가 들어갔다고 한다. 또 잔치 준비 등으로 황실 업무도 장기간 중단됐다. 모두 백성들의 부담이자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재적 가치는 높다. 당시 공연예술과 음식문화의 정수가 다 들어가고 그것이 의궤와 도병 등을 통해 기록으로 남았다. 이를 재연하는 행사는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공연을 문화 상품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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