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순 전라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 실장

거문고와 동고동락한 세월이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다. 인생을 한결같이 30년 지기의 벗으로 함께해온 셈이다.

대학 시절 거문고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 모양은 투박하고 소리는 왜 그리 둔탁했던지 낯선 이방인을 대하듯 마음은 가지 않았으나 청춘 시기를 거쳐 삶의 전반부를 그림자처럼 봄 여름을 함께 맞이했고 가을 겨울을 함께 준비했다. 이제는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거문고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되었다. 

정다운 벗 거문고를 잠시 소개해 보자면 무릎 위에 길게 뉘어 놓고 연주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현악기이다. 오른손에는 술대를 쥐고 현을 쳐서 소리를 내고, 왼손은 공명통 위에 고정된 괘를 짚어 음정을 얻는데, 그 소리는 웅숭깊고 진지하게 들린다.

이렇게 묵직한 거문고의 음향은 문인화가 그런 것처럼 '지적인 남성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선비들의 생활공간에서 머물렀던 그 인연의 흔적이 소리의 형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거문고 소리가 선비들의 서실에 퍼지는 은은한 묵향이나, 한여름날 소나무 숲을 지나온 서늘한 송풍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거문고에 축적된 문화의 상징에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군자의 벗'으로서 마음을 담고 뜻을 기르는 데에 쓰였던 거문고는 조선조 선비들이 덕을 기르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필수과목으로 꼽힐 만큼 연주하는 이도 그만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거문고를 좋아한 선비들은 거문고 타기 좋은 때를 생각했다. 

다산 정약용이 지은 「다산 시문집」 중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달 둥글면 거문고 타고 노래하기로 하였는데/ 어찌할까 온 하늘을 먹구름이 다 덮다니// 옷을 모두 챙겨 입고 헤어지려고 할 즈음에/ 숲 끝에 얼굴 내민 예쁜 달을 보게 되면// 그 얼마나 반가울까”

다 같이 모였어도 달빛이 없고 먹구름이 끼었으면 거문고를 타고 노래하지 않고 헤어지려 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거문고를 타기 좋은 때는 언제였을까.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고금을 앞에 놓고 마땅히 연주해야 할 때와 연주하지 말아야 할 때를 14가지로 꼽았고, 우리 선비들은 5가지 때를 '오불탄(五不彈)'으로 꼽았다. 비바람이 심할 때, 교양 없는 속된 사람과 어울렸을 때, 의관을 갖추지 못했을 때, 앉을 자리가 적당하지 않을 때 그리고 시끄러운 시장이나 혼잡스런 곳에서 거문고 연주를 금했다. 반대로 음악을 아는 이를 만났을 때, 누각이나 석상 위에 앉았을 때, 산에 오르거나 심산유곡에서 쉴 때, 물가에서 노닐거나 뱃놀이를 할 때, 나무 아래 쉴 때, 날씨가 청명하고 달이 밝을 때를 거문고 타기 좋은 때로 꼽았다. 즉, 거문고 타기 좋은 때는 심신이 번잡하지 않고 환경이 깨끗하며 맑은 기운이 있는 곳에서 홀로 혹은 음악을 하는 좋은 이들과 함께 있을 때였다.”(송혜진 『꿈꾸는 거문고』 15쪽)

반면 선비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는 거문고를 현대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대할까. 고유의 전통 악기임에도 그 근본을 알지 못하고 그저 접하기 어렵고 힘든 악기로 생각한다.

특히, 서양 악기에 밀려 대중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필자에게 거문고를 배우고자 입문했던 제자들은 마음을 수양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악기로 항상 곁에 두고 시절을 보내며 호젓한 정자를 찾아가 연주하며 풍광을 즐긴다고 한다.

거문고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도덕과 윤리를 모르고 상처와 고뇌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여유로운 악기라 할 수 있겠다.

기회가 된다면 올여름 폭염 속 무더위를 잊고 시골 대청마루에 누워 바람이 퉁기고 지나가는 거문고 소리를 들어 들어보길 바란다. 시원한 계곡의 물처럼 맑은 울림으로 조선조 선비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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