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3월9일 새벽. 캐나다 노바 스코티아주에 위치한 웨스트레이 광산이 폭발했다. 이 사고로 무려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중 11명은 광산에 깊이 매몰돼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원인은 광산 측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탓이었다. 사후 조사에서 메탄가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은 물론 경보장치를 끈 사실 등이 드러났다. 기업 책임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도 이어졌다. 캐나다 법체계는 직접적 책임자인 기업을 형사처벌할 수 없었다. 기업 대표나 고위 관리책임자 등은 아무 벌도 받지 않았다. 노동계를 위시해 시민사회는 들끓었다. 결국 2003년 캐나다 의회는 ‘웨스트레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기업 살인법’으로도 불린다. 이제 캐나다에서는 사망 등 큰 재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의 고위층과 책임자 등은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 비슷한 입법이 이어졌다. 호주는 2003년 수도 캔버라가 있는 준주에서 ‘산업살인법’을 제정했고 영국은 2007년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 살인법’을 통과시켰다.

산업재해가 잦은 우리나라에서도 이 법안의 제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세월호 사고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 사고는 촉매제가 됐다. 한국은 OECD국가 중 산업안전 면에서 거의 꼴찌에 해당할 정도로 산업재해 사망자가 많다. 2017년 기준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산업 노동자 10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는 3.61로 OECD평균 2.43보다 훨씬 높았다.

결국 우리나라도 기업살인법 제정 대열에 들어갔다. 지난 1월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것이다. 이 법은 중대한 인명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사망사고가 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에게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산업현장에서 사고가 터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경기 양주의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토사 붕괴로 3명이 사망하더니 이달 8일에는 경기 성남 건축공사장에서 2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11일 여천 NCC 3공장이 폭발해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또 15일에는 국민의 당 안철수 대선후보 유세차량에서 2명이 가스에 질식해 숨지는 사고가 터져 고용부가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형량이 무겁다거나 경영에 부담이 된다는 등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서 잇달아 터지는 산업재해에 국민들은 할 말을 잃고 있다. 적어도 이 법은 ‘노동자 사망을 기업이 매우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법 취지는 처벌이 아닌 예방이라는 점을 모두들 인식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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