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재(1954) 사진작가는 전주 한지에 사진을 인화하는 작가, 시장 속 인물들을 찍는 장터 작가로 잘 알려졌다. 전라북도 곳곳의 모정을 담은 사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장터와 모정, 이 둘은 장소 특정적 성격을 지니지만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람’이다. 작가는 장터 속을 직접 들어가 사람들의 꾸밈없는 표정과 동작을 순간적으로 프렘임에 가둔다. 

현장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 카메라 렌즈는 빈 모정을 향해 있지만, 결국 그가 바라보는 것은 모정 안에서 일어났던 마을 사람들의 지난 이야기였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기획전시로 마련된 이흥재 사진전 ‘남원, 달빛에 물들다’에서도 사람을 프레임에 담아냈다. 

남원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풍경과 남원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포착해 낸 것이다. 

특히 최근 수묵화를 연상케하는 '월광산수'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 작가가 이번 전시회에서도 같은 형식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구분된다. 1부에서는 달빛 아래 드러난 남원의 사적지, 명승지를 보여 준다. 남원이 간직한 역사적 이야기들이 사진이라는 시각 예술로 치환했다. 

2부에서는 청색 어둠에 물든 지리산의 몽환적 풍광들로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특히 밤하늘 아래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지리산 능선의 모습을 4미터 이상의 대작으로 담아내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작가의 이러한 작품은 ▲수천 년 전 남원에 터를 잡고 살았던 청동기인의 이야기(대곡리 암각화) ▲또 하나의 왕국을 꿈꾸다 잠들어 버린 삼국시대의 이름 모를 지배자(유곡리 가야고분) ▲고려 석불을 향해 현세와 내세의 복을 두 손 모아 빌던 어머니들(지당리 석불입상) ▲약 200년 전 마을에 우환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그루, 한 그루 비보림을 조성했던 행정 마을 사람들(서어나무숲)의 이야기다.

눈여겨볼 작품은 그의 지리산 작품이다. 해질녘 또는 보름달 아래서 공간을 채우는 청색 어둠(트와일라이트 블루, twilight blue)이 유독 쓸쓸하게 느껴진다. 

밤이 되면 풍경 속 사물들은 어느 순간 동시에 멍해지면서 본연의 색을 잃는다. 작가는 그 순간을 포착해 가슬가슬한 한지에 인화했다. 

한지에 스며든 청색 어둠과 검정 어둠은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에게 풍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그가 남원의 역사적 장소 또는 지리산 골짜기마다 청색 어둠을 입히는 이유가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흥재 작가는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는 넉넉한 지라산을 제대로 사진에 담아야겠다고 마음먹은게 1984년이다”라며 “28만원짜리 중고 카메라를 구입해 지리산을 찍기 시작했고, 지리산에 오를 때마다 남원 시외버스를 경유지로 삼았다”며 남원과의 인연을 밝혔다. 그러면서 “남원지역 불상 연구를 주제로 대학원 논문을 작성했고, 그 시기 남원 곳곳을 조사하며 돌아다녔다”며 “남원은 두 번째 고향처럼 애착 가는 고장”이라고 설명했다.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무성서원 부원장을 맡고 있는 이흥재 사진가는 ‘김두해·이흥재·선기현’展을 1988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진행해왔다. 2018년 단체전 ‘정읍을 들여다보다’, 2018년 개인전 ‘무성서원에서 선비의 길을 묻다’, 2020년 개인전 ‘월광산수’ 등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2층에서 진행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특별방역대책 후속조치에 따라 관람객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완료자 등에 한정해 입장이 가능하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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