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천진난만으로 표현되는 그 시절은 지금은 돌아갈 수 없다. 어른이 되어서 더욱 그리운 그때 그 시절. 이제 다시 아이가 되어 솔직하고 발칙한 상상을 화폭에 담았다.

김예은의 첫 개인전 ‘순수의 시대’는 어른들이 잃어버린 과거를 되살려 준다.

작품을 보는 순간 관람객들은 자신을 향해 해맑게 웃고, 장난을 치고, 자신만의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어린아이와 마주하게 된다. 아이는 어른들의 숨막히는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든다.

작품 ‘엘리베이터’안에는 마스크를 쓰고 감정과 생각을 알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는 태연하게 목마를 타고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 작가는 “감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비눗방울처럼 그들 사이로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엘리베이터 옆에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아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의 모습은 답답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나의 상상일 뿐인 것이다”고 한다.

또 다른 작품 ‘술자리’는 별 의미없는 의례적인 직장 회식 자리다. 술집에서 회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목각인형처럼 딱딱하고 감정이 없어 보인다. 그 속에서 술 대신 분유를 마시고 있는 아이는 그 상황과는 대조된다. 작가는 딱딱한 회식자리에서의 답답함을 아이가 분유를 마시는 장면을 통해 해방시킨다.

지하철에 들어가는 입구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지하철 입구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은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이다. 유명한 연예인이 새벽에 지하철 입구에서 나오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시도하지만 모두들 무시하고 자기 가던 길을 가는 모습을 보았다. 작가는 이곳이 바쁘고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공간에서 아이가 인형과 함께 즐겁게 춤을 추며 노는 장면은 바쁜 공간을 무대로 만들어준다. 작품 ‘지하철입구’다.

이밖에 지하철 안에서 무관심하고 지쳐 보이는 승객들 사이를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무료함을 가르는 아이, 정치가들의 권위적이고 도식적인 회의석상에 앉아서 해맑게 웃는 아이, 이 아이들을 통해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어른들의 세계로 설정된 상황에서 아이의 천진난만한 행동들은 시간여행자처럼 시공간이 분리되는 낯선 풍경을 만든다. 그는 잠시 시간을 멈추고 어린시절의 자신을 소환해 놀이를 즐기며 화면 밖의 우리에게 “뭐가 이리 심각하죠? 함께 놀아요!”라며 무겁게 짓눌리고 경직된 감정을 부드럽게 풀어버리며 우리가 왜 살아가고 있는지 진솔한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일순은 “작가는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조심스럽고 힘찬 발걸음에서 ‘아이’를 등장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상상과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경계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어떤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갈지 작품 속에 해법을 펼쳐놓았다.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좀 더 적극적으로 상황에 개입하며, 아이의 모습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즐거운 상상을 통해 문제에 더 가까이 다가가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참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작가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전시는 7일부터 5월1일까지 전주 서학동사진관에서 열린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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