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자 국민연금공단

그런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어 나폴거리는 흰아사면 커튼을 젖히며 아침을 맞이하고 남들만큼 여유를 지닌 중년의 삶을 살 것 같았다. 물론 현재의 내 모습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적어도 남들보기에는.
 올해부터 지인들이 하나둘씩 정년을 맞이했다. 정들었던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30여년동안 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지내다가 긴 휴가 들어간다는 어느 지인의 작별인사 메일을 받고 나도 모르게 울컥하였다. 오랜 수고로움의 시간이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인생 2모작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친구들도 퇴직 이후 부족한 생활비 부담감과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 온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허탈감으로 힘들어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대견해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앞선 모습을 보았고 본인들 또한 누군가에게 앞선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진 ‘정년’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도 않고 잠시 쉬어가는 것 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시에서 주관하는 은퇴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50+ 생애 재설계 프로그램’이었는데 교육기간은 10개월 정도였다. 대부분 가까운 시일내에 정년을 앞둔 사람이었고 퇴직자도 있었다. 나름대로 한자리씩 했던 분들이 많았고 경력 또한 대단했다.
 처음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으로 적극 참여했다. 2막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자신의 경력과 연륜으로 무엇인가를 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유년시절의 문화와 감성이 공감되어 추억을 소환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참여자 중 기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 지원제도를 활용하여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라도 있었으나, 현실의 벽은 두터웠다. 퇴직 전의 지식을 활용하여 하고 싶었던 일의 기대와 바람은 쉽게 무너졌다. 서로 다른 환경과 경험은 함께 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서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뚜렷한 결과물도 없이 취향별 소모임을 자율적인 구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자신을 낮추어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라는 좋은 경험을 하였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소통의 벽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허한 용기가 필요하지만,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자신을 지켜내기란 참 어려운 숙제인 것 같다.
 인생은 결국 사람 공부이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벽을 보면 된다고 하는데 벽은 면(面)이다. 있는 그대로의 얼굴에서 삶이 표현되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중년은 찔레꽃 같은 아픔을 지니고 산다. 그 아픔은 절대고독이 되기도 하여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하는 무게로 남는다. 그래서 가끔은 고집 같은 아집이 자신의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코로나19 영향이 팬데믹으로 이어졌고 혼밥과 언택트로 우리의 일상들이 또 다른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어지고 있다. 옷을 뒤집어 입는 듯한 변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여 적응하려면, 나를 돌아보는 담금질 같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짧은 봄날 같은 인생의 시간들, 쫓기듯 사는 이 순간에도 강물 같은 삶의 욕망들이 한계를 넘는다.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채찍질로 자신의 심장을 힘들게 하지 않는지 중년과 정년의 단어가 오버랩 되는 가혹한 혹서기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어떤이들에게
 봄꽃보다 곱게 물든 단풍이 아름답다는 말로 위로하기에는 이성적 허영이 포장되어지는 조작이 필요하다. 예습도 없이 이순(耳順)의 시간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하늘을 나는 양탄자의 꿈을 저녁마다 선물하고 싶다. 그래도 중년은 아름다운 또 다른 시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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