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었다. 어느덧 입동이 코앞이다. 구절초를 비롯한 가을꽃들이 단풍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소리로 수런거리는 이때, 섬은 어떻게 가을을 앓고 있을까? 군산시 옥도면에 있는 선유도(仙遊島)를 찾아 나섰다.

30여 킬로미터 새만금방조제를 내달리다 보니 어느덧 바다 위를 떠가고 있었다. 2017년에 개통된 고군산대교는 신시도와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를 잇는 연륙교다. 예전 같으면 군산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선유도를 단숨에 달려가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하루쯤 묵지 않고 빠져나가는 차량과 관광객 속에서 섬은 외로운 낯빛으로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

선유도의 본래 이름은 군산도(群山島)였다고 한다. 바다 한가운데 산들이 무리 지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군산도에 설치되었던 수군진(水軍陣)을 지금의 군산으로 옮기면서 ‘군산’의 이름을 빼앗겨 군산도는 고(古)군산도가 되었다가 지금의 선유도가 되었다. 지금 선유도 인근의 섬들을 고군산도라 부르는 것은 그때의 흔적이다. 70개가 넘었던 고군산도의 섬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63개가 남아있다.

선유도의 주산인 망주봉(望主峰,152m)이 선유도에 들어서는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주었다. 바다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들을 압도하는 듯한 강한 힘이 느껴지는 바위산 망주봉은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전해 오는 설화에 의하면, 오천 년 도읍을 이루기 위해 왕이 되실 ㅅ분이 선유도로 온다는 말을 듣고, 젊은 부부가 나란히 서서 북쪽을 바라보다 지쳐 굳어버린 산이라고 한다.

망주봉 기슭에는 오룡묘(五龍廟)라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랫당, 윗당 두 채의 당집인 오룡묘가 고려 시대 이후 영험한 기도처로 알려진 것으로 보아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것으로 보인다.

인근 섬의 당집들이 풍어와 안전만을 기원하는 곳이었다면, 이곳 오룡묘는 먼 외국을 오가는 뱃길의 안전과 무역의 성공을 기원하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선유도가 백제와 후백제, 고려에 이르기까지 서해안에서 출발한 외교 및 무역선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항구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호남, 경남지역의 세금인 쌀을 싣고 나르는 조운선(漕運船)의 경유지였기 때문이다. 오룡묘에서 선유도 인근의 섬들과 그 섬들을 안고 있는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모래톱이 기러기를 닮았다고 해서 평사낙안이라고 불리는 명사십리 선유도해수욕장은 선유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다.

여느 때와 달리 한산한 여름을 보냈을 해수욕장, 하얀 백사장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몽글몽글한 모래 위에 누군가 써놓은 이름을 지우며 파도가 빠져나간 자리에 ‘쓸쓸’이라는 소리가 서성거렸다. 때마침 일몰시각이어서 장엄한 선유도의 해넘이를 볼 수 있었다. 황혼에 물든 장자도와 대장도의 그림자가 백사장에 내려앉아 우리 일행의 마음 까지 붉은 낙조에 실려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는 선유도, 지금은 섬 아닌 섬이 되어버렸다. 연륙교를 걸어 신선들이 모두 어디론가 떠나버린 듯 선유도는 외롭게 떠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단했던 올해가 저물기 전에 외롭고 아름다운 섬 선유도에서 선유낙조(仙遊落照)를 바라보며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김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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