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자존심인 전라감영이 3년의 재창조 복원공사를 마치고 7일 도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일제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70년만으로 총104억 원이 투입돼 감사 집무실이었던 선화당을 비롯해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인 관풍각, 관찰사 가족들이 지낸 내아, 내아 행랑과 관찰사가 휴식을 취하던 연신당, 관청출입을 위한 3번째 문인 내삼문, 비장 사무지원을 위한 비장청행랑 등 7동의 핵심건물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전라남북도는 물론 제주도까지 포함한 조선시대 56개 군과 현을 관할했던 지방통치 행정기구였던 전라감영이 위치한 전주가 호남의 중심이었음을 재확인 확인시켜주고 전주·전북인의 위상과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단 점에서 그 의미는 크다.
전라감영은 타 지역 감영과 달리 조선왕조 500년 동안 단한차례도 전주를 떠난 적이 없을 만큼 호남에서의 전주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1896년 전라도가 전북과 전남으로 나뉘고 제주가 분도하면서 비록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호남정신이 전주로 이어진 이유기도 하다.
특히 전라감영부지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1300여 년간 관청자리였음을 확인케 하는 유물이 다수 출토될 만큼 역사적으로도 도시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완벽하게 갖춘 곳이다. 2018년 전라도 1000년을 계기로 역사바로세우기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잊혔던 전주·전북의 재발견, 재창조가 강조된 것이 오히려 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전라감영복원이 단순한 옛 건물 복원에 그치지 않고 가야문화에서부터 백제, 후백제, 그리고 동학농민혁명에 이르기 까지 중요한 시기, 한국의 중심이었던 찬란한 역사를 바탕으로 전주의 가치와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시발점이 돼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이번 완공된 감영복원이 전체 부지의 동쪽 부분에 국한된 것으로 대사습놀이의 기원이 된 통인청 등이 있었던 서편과 현재 완산경찰서가 위치한 남측의 고증과 복원, 개발이 미뤄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큰 발을 내딛었다. 이제 전라감영 완전복원과 함께 호남제일성 전주의 위상과 영광을 찾기 위한 방안 마련에 좀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문화시설 가치를 넘어 지역 활성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을 넘어 미래와의 가교를 위한 발전적 방안이 무엇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전라감영복원의 깊은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 지금 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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