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과 언론인의 ‘경계인’

<윤지용의 사람이야기-4. 방송작가 송가영> 전라일보l승인2020.08.23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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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가영 작가는 20년차 방송작가다. 방송작가는 드라마작가와 구성작가로 나뉘는데, 지역방송에서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대부분 구성작가들이다. 송 작가도 구성작가다. 구성작가는 교양 프로그램, 오락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등의 기획과 구성에 참여하고 대본을 작성한다. 자료조사와 취재를 통해 얻은 사실을 가공해서 이야기를 만든다. 시나 소설을 창작하는 문학인과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인의 중간 어디쯤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송 작가는 어려서부터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해서 국문과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대입수능시험 결과 국문과의 예상 합격점수보다 높은 성적이 나왔단다. 지금도 장래의 희망이나 적성보다는 시험 성적에 맞춰서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시절에는 더 그랬다. 교사였던 사촌오빠를 비롯해서 집안 어른들이 “국문과 나오면 배고프다”며 다른 학과에 진학할 것을 권했다. 당시에 또래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학과가 신문방송학과였다. 신문방송학과도 글 쓰는 일과 무관하지 않겠다 싶어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신문방송학과의 영상제작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서툴게 대본을 써보기도 하고, 학과에서 개최한 방송아카데미에 오신 다른 대학 교수님의 특강을 통해 방송작가의 꿈을 품게 되었다. 대학 4학년 때 방송사에서 PD로 일하고 있던 학과 선배로부터 과사무실에 방송작가를 지망하는 학생이 있으면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조교선생님의 추천으로 처음 방송국 일을 시작한 것이 2001년 1월 9일이었다. 나중에 결혼 후 낳은 아들의 생일과 같은 날짜다. 송 작가는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세상인데, 자기가 좋아하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으니 운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작가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정식으로 방송작가 양성과정을 거치지 않고 입문한 탓에 선배 작가들과 PD들에게 혼나면서 일을 배웠다. 처음에는 울기도 많이 울었다. 혼나는 것이 서러워서라기보다는 ‘나름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만큼밖에 못 하는구나’하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좋아하는 일이라서 참고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방송작가들 중에는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종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큼 빛나고 안락한 직종이 아니다. 서울에 있는 방송사들에서 잘나가는 작가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열악한 처우와 낮은 소득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지역방송들의 경우에는 훨씬 더 열악하다. 그러나보니 오래 버티지 못하고 중간에 다른 일을 찾아 떠난 이들도 더러 있었다. 행정이나 정치 영역의 홍보담당이나 공보담당 일자리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프리랜서라는 특성 상 신분이 불안정하기도 하다. 비정규직의 설움을 자주 겪는다. 결혼이나 임신을 하면 으레 일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절도 있었다. 열심히 일하던 후배가 담당 PD와의 불화로 졸지에 일을 그만두게 된 적이 있었다. 지역의 방송작가들 중 고참인 선배에게 함께 대응하자고 제안했다가 “우리는 프리랜서잖아. 제작진이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둘 수밖에 없는 거지.”라는 대답만 들었다.

명색이 ‘프리랜서’이지만 방송사에 전속처럼 일하다 보니 막상 그다지 ‘프리’하지 못하다. 함께 일하는 방송사 제작진들의 업무 흐름에 맞춰 출퇴근해야 한다. 오래전에 언젠가는 방송사 직원처럼 매일 근무일지를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국장도 있었다. 방송사 직원처럼 일하면서도 같은 처우와 복지는 누리지 못한다. 당연히 유급휴가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물론 고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방송작가라는 일을 통해 얻는 재미와 보람이 훨씬 더 많았기에 한눈팔지 않고 일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스물다섯 편의 정규 프로그램과 스물세 편의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성하다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전혀 몰랐던 분야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지역방송의 작가로 살다보니 지역에 대해서 폭넓게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 평생 자신의 영역 안에서 그 세상이 전부인 줄만 알고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넓은 세상을 사는 셈이다.

그동안 만들었던 프로그램들 중 가장 보람 있고 뿌듯했던 것은 2013년에 만들었던 ‘K소리 프로젝트 악동(樂童)’이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K-Pop 열풍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청소년 국악밴드를 만들어서 세계 3대 축제로 꼽히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내보내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국악에 재능이 있는 청소년들을 선발한 후 국악인 임동창 선생이 총감독을 맡고 고 신해철 가수가 음악감독을 맡아 집중적인 연습을 했다. ‘K소리 악동’들은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전세계의 음악인들과 청중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그는 언젠가는 이 프로그램의 시즌2를 꼭 만들어보고 싶단다.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하는 것은 지난 2008년에 방송되었던 최명희 작가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어둠은 빛보다 어둡지 않다” 최명희 작가가 생전에 강연에서 했던 말을 제목으로 썼다. 그가 최명희 작가의 <혼불>을 읽은 것은 아버지 덕분이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아버지는 책을 많이 읽으셨다. 아버지가 권해주신 <혼불>을 여러 번 읽었고 대학 시절에는 아버지와 함께 최명희 작가의 고향이자 소설의 무대인 남원 사매면 노봉마을에 찾아갔었다. 지금처럼 생가가 단장되어 문학관이 조성되기 훨씬 전이었다. 나중에 그가 작가가 된 후에 아버지는 “니가 최명희 작가 다큐멘터리 한번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하셨다. 송 작가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어둠은 빛보다 어둡지 않다’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이 만든 이 다큐멘터리를 보지 못하고 한 해 전인 2007년에 돌아가셨다.

송 작가는 3녀 1남 중 셋째 딸이다. 자식들 중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반항해서 회초리를 맞은 적도 많지만, 유난히 아버지와 가까웠다. 아버지는 속정 깊은 분이셨다. 박봉에 고생한다며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반대했으면서도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다 들어주고 토닥거려주셨다. 그렇게 다 받아주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속상한 일이 있어도 풀 데가 없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일찍 돌아가셨다. 송 작가가 열일곱 고등학생 때였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일찍 여의었지만, 대신에 어진 시어머니를 만났다. 남편이 어렸을 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홀로 다섯 남매를 키우느라 억척스럽게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집안 살림도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하신 분이다. 결혼 직후부터 “여성들도 당당하게 자기 일을 해야 한다”며 육아는 걱정 말라고 하시더니 실제로 두 아이를 모두 길러주셨다. 지금도 아이들은 할머니 댁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온다. 능력 있고 경험도 제법 쌓은 후배들이 결혼과 출산으로 일을 그만두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자신은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화면에 보이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작가의 일이 아니라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화면 밖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정성을 쏟는 작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내심 불안하면서도 늘 씩씩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 사진 윤지용(도서출판기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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