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원불교 교무(강살리기익산네트워크 대표)

사회적 거리두기로 안정적인 보건 관리가 되는가 싶더니 경제적 위기감을 극복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이 좋은 계절을 놓치기 아까워 몸부림치는 젊음의 열정이 큰일을 만들어낼 추세다. 젊은이의 대표적인 시대문화인 클럽에서 발생 된 바이러스전염으로 수도권을 비롯 전국이 긴장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코로나19는 가능함과 불가능이 혼란스러운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난국 속에 치러진 총선은 여당의 압승으로 승자와 패자가 정해졌지만 움직일 사람과 다음을 기다리고 준비할 사람으로 희비가 나누였다. 정국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연결하고 기대와 희망을 준비하지만 풀어야 할 일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국제정세에서는 트럼프와 시진핑이 1년전 어렵게 무역전쟁을 종식하는가 했더니 언제 그랬냐! 하며 코로나사태 이후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격랑속에 상대를 누르려 한다. 가까이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도 격동의 시간들이다. 정치외교적으로 국가와 국가 사이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고 했는데 그렇게 친하던 이웃나라가 일순간에 비난의 화살을 당길때면 信義가 아쉽기만 하다. 인간의 역사기록에 지구별에서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곳곳에서는 상대방의 존재를 모두 떨구어 내고 싶은 움직임이 있으니 갈등과 분쟁이 쉴 날이 없다.  주나라 문왕이 괘사를 짓고 그 아들 주공이 완성시켜 이름을 붙인 주역, 그리고 동양의 선각자들의 가르침에 음양상승의 원리 란게 있다. 서로 生하거나 서로 極하는 원리라고도 할 수 있다. 살고 죽는 일이다. 우리 인간 세상 들여다보면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상생과 상극의 기운이있다. 고사성어 가운데 북쪽 변방에 사는 노인과 말에 얽힌 '새옹지마'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삶의 경험인 것이다.
 일제강점기 탄압의 시대, 소태산 박중빈은 약소민족으로서 식민지 생활을 면치 못하는 우리민족에게 ‘강자약자진화상요법(强者弱者進化上要法)’으로 희망의 문명사회를 제시했다. 1928년 2월 서울에서 여성제자들에게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으로 약자인 갑동리(甲洞里)와 강자인 을동리(乙洞里)에 대한 비유를 들어 세상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무모한 강자가 약자를 업수이만 여겨 차차 을동리 사람들이 갑동리로 와서 여러 가지 수단으로 둘러도(속여)먹고 돈과 곡식도 빼앗으며 토지(土地) 전답(田畓)도 저희가 받아먹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무식자(無識者)니 미개자(未開者)니 야만인(野蠻人)이니 하고 가진 학대”를 하면서 ‘문서없는 노예’로 만들었다 하며  제국주의 열강의 약소국에 대한 부당한 침략과 식민수탈에 대하여 비유적이지만 강도 높게 꼬집어 비판하였다.
 비가 온 뒤에 물웅덩이에 놀고 있는 올챙이들을 보면 “현재의 강(强)을 남용만 하는 사람들”은 마치 마른 못에 언제 죽을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올챙이’와 같다고도 하였다.” “ 강자는 약자에게 그 힘을 베풀어 약자를 이롭게하는 것으로 약자를 강자로 진화시키는 것이 영원한 강자가 되는 길이요, 약자는 강자를 앞선 이로 삼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여도 약자의 자리에서 강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나아가는 것이 다시 없는 강자가 되는 길이다. 강자가 강자 노릇을 할 때에 어찌하면 이 강이 영원한 강이 되고 어찌하면 이 강이 변하여 약이 되는 것 인지 생각 없이 다만 나만 이롭게하고 상대에게 피해만 주고 보면 아무리 강자라도 약자가 되고 마는 것이요, 약자는 강자 되기 전에 어찌하면 약자가 변하여 강자가 되고 어찌하면 강자가 변하여 약자가 되는 것인지 생각 없이 다만 강자를 대항하기로만 하고 약자가 강자로 진화되는 이치를 찾지 못한다면 또한 영원한 약자가 되고 말 것이다.” 미래의 희망을 찾아가는 대한민국의 완성이 영원한 강자가 되는 길, 우리가 위기를 겪어가며 대립적 구도를 벗어나 서로 이로움을 찾아 이루는(自利利他) 조화로운 상생의 관계를 설정하는 길은 음양상승의 원리를 통찰하고 조금 더 겸허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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