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님이 끊긴 늦은 저녁. 그리 넓지 않은 가게에서 하루 종일 수없이 오가며 피곤하지만 집에 가는 길은 늘 가볍다.
▲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중학생이 되는 큰아들 유호영군, 11살 딸 가을, 막내 호진이와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이 크면서 예술작품(낙서)이 늘어나 도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모두 다 추억거리.
▲ 주방에서 재료를 손질하는 이사금씨
▲ 식당에서 제일 인기 있는 중국 전통소시지 ‘하얼빈홍장’을 만들고 있다.
▲ 코로나19 여파로 배달과 포장 손님이 많아져서 진공포장에 분주한 이사금씨
리쓰친씨가 개업한 중국전통요리전문점에서 포장작업을 하며 저녁장사 준비가 한창이다.

“신종 코로나19, 또한 지나가겠지요.”
중국인 출신의 억척 아줌마 리쓰친 씨(40)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전주 남부시장 코오롱상가 앞 중국 전통식당을 운영하는 그는 한국에 온지 올해로 14년째. 20대 후반의 꽃다운 나이에 중국 하얼빈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큐피드 화살을 쏘았다.
 결혼 후 두 아들과 딸을 낳아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다 밖으로 나가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부시장 야시장에서 억척스럽게 2년 동안 애플수박 쥬스를 팔아 지금의 식당을 개업했다. 사실, 리쓰친 씨 집안은 식당과 뗄 수 없는 이력이 있다. 바로 위 오빠가 일본 오사카에서 중국 식료품가게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할머니가 중국 하얼빈에서 식당을 하며 집안을 일으켰다.
 이런 집안내력 덕분일까. 도내 최초로 지난해 10월 문을 연 중국 정통음식점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3천300여 명의 유학생을 포함해 도내 거주 중국 출신은 1만5천여 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고향음식을 먹으며 타향살이 설움과 고통을 달랠 수 있어 중국인들이 주로 애용하고, 한국사람들도 정통 중국식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섰던 것이다. 식당은 이렇게 올해 1월 하순까지 탄탄대로였다. 그런대 웬걸? 구정 명절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문제가 터지더니 하나둘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해 최근엔 아예 손님이 뚝 끊겼다.
 한국에 온지 14년만의 최대 위기가 코로나19와 겹친 셈이다. 하지만 리쓰친 씨는 절망하지 않는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요”. ‘호크 쿼퀘 트란시비트(Hoc quoque transibit)’,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라틴어 명언이 그의 입에서 여유 있게 흘러 나왔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만 흘러나올 때, 앞이 캄캄할 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리쓰친 씨의 말에서 ‘지나갈 것’은 두 가지이다. 전국을 불안감에 몰아넣은 감염병도 지나갈 것이고, 이로 인한 자신의 위기와 고통도 지나갈 것이란 말이다.
 사실, 그는 2009년 신종 플루 공포가 덮쳤을 때의 트라우마를 잊지 못한다. 한국말도 서툴러 주변인과 대화조차 힘들었을 때, 큰 아들이 신종 플루에 걸려 동네 소아과를 찾았다. 그런데 간호사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무려 3시간 동안 아이들과 함께 병원에서 꼼짝없이 대기해야 했던 일이다.
 한차례 고비를 넘긴 경험 덕분이었을까? 코로나19 사태 역시 조심하고 예방만 잘 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 속이 불편해 내과를 찾았는데, 사람들이 중국인이라며 피하는 모습에 약간 불편했어요.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거에요. 열심히 일해서 2호점을 낼 것에요.”
중국 속담에 ‘낙타는 말라 죽어도 말보다 크다(瘦死的駱駝比馬大)’는 게 있다. ‘썩어도 준치’라는 우리 속담과 비슷한 말이다. 중국 명문 식당가 출신의 리쓰친 씨가 전북에서 앞으로 어떤 음식신화(神話)를 써 나갈지 기대가 된다.

글·사진/장태엽기자·mode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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