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업미생물과 연구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이런 가을날 해 질 무렵이면 사랑하는 여인의 창가에서 감미로운 선율로 ‘세레나데’를 부르는 멋진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 사랑과 감성의 조화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음악인 ‘세레나데’가 미생물의 세계에도 존재한다.
2003년 ‘AgraQuest’라는 회사에서 ‘세레나데’라는 미생물농약을 개발했다. ‘세레나데’는 기존의 미생물농약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는 신개념의 제품으로 2009년 단일 품목으로는 기록적인 매출 1억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한 이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미생물농약은 화학농약 사용량 증가에 의한 농경지 오염 등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으로 오래전부터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그렇지만, 적용할 수 있는 병해충의 범위가 제한적이고, 보관이나 사용상 어려움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세레나데’는 기존에 개발된 미생물농약의 단점을 보완한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세레나데’는 기존의 제품들에 비해 매우 넓은 범위의 병해충에 대한 효과가 있었으며, 빛이나 고온 등 환경 변화에 대한 안정성도 뛰어났고, 이에 더해 식물생육을 촉진하는 효과까지 가지고 있었다.
‘세레나데’ 개발로 미생물농약 시장은 새 지평을 열었으며, 친환경 농업의 파수꾼으로 미생물농약이 새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사랑의 노래 ‘세레나데’가 연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조화로운 사랑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하듯이, 미생물이 만드는 ‘세레나데’는 화학농약을 이용해 다소는 과격하게 병해충을 방제하는 농업생산 방식에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환경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생태계의 조화를 우선시하면서, 농업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생물에 대해 많은 사람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람과 가축에 병을 일으키고, 또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자란다는 편견과 오해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계를 돌아보면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보다, 그에 못지않게 많은 수의 미생물이 인간의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발효 미생물이다. 인간이 먹는 수없이 많은 음식은 미생물의 대사 활동, 즉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치, 장류, 젓갈에서부터 빵, 술, 요구르트 등 발효 미생물 없이 인간의 식탁은 지금처럼 풍성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외에도 항생제와 의약품, 친환경 에너지와 인류에게 유용한 다양한 물질을 생산해 내는 미생물은 지구상 최고의 생산자이다.
미생물은 생산자인 동시에 지구상의 폐기물을 분해하는 최고의 분해자이다. 미생물이 없다면 동식물 사체는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지구 생태계에 쌓일 것이다. 생물 유래의 유기물 뿐 아니라 유독한 화학물질 등 미생물이 분해하지 못하는 물질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해 농촌진흥청은 2020년부터 농업 환경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하우스용 비닐 등 폐플라스틱과 잔류농약 등을 미생물을 이용해 분해하는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 앞으로 미생물은 병해충 방제에서부터 오염된 농업 환경 개선까지 조화로운 농업 생태계 유지를 위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기대되지 않는가? 이제 우리는 마음의 귀를 열어 미생물이 연주하는 다양한 ‘세레나데’를 들을 준비를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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