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불을 드리며

오피니언l승인2019.11.27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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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국민연금공단
 
대웅전에 꿀벌 한마리가 따라 들어왔다. 은은한 독경소리에 방해가 될까봐 집으로 가라고 손으로 휘저었더니, 놀란 벌은 아내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는 법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와 함께 부처님을 향해 합장을 했다.
 결혼생활로 2년마다 한 번씩 이사를 했다. 전세만 살았다. 평소 아내는 작은 평수라고 좋으니 내 집에서 살아봤으면 하며 노래를 불렀다. 얼마 전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큰애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되어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했다. 
 아파트는 이사를 가기 전보다 가격이 두 배 이상 올랐다. 꿀벌처럼 저축을 했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며칠을 끙끙대던 아내가 아파트를 살 계획이 세웠다. 기존 전세금에 중간정산 퇴직금과 은행대출을 포함한 금액이다.
 다음 날부터 아파트 몇 개를 골랐다. 인터넷을 뒤지고, 십여 개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돌아다녀 정보를 얻었다. 아내는 가격을 현 시세보다 천만 원 정도 낮게 결정한 뒤 급매물을 기다리자는 것이다. 거래가 잘 되지 않는 시기라 나는 아내의 말에 수긍하였다.
 급매물이 있어 원하는 가격에 계약을 했다. 문제가 생겼다.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지 못해 삼천만원이 부족했다. 중간정산 신청자가 많아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아파트는 최대로 대출을 받아 추가대출을 할 수 없었다. 잔금을 지불해야 날은 코앞이라 답답해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빌려 주겠다는 것이다. 자존심을 세울 여유가 없었다. 아내가 어머니에게 어떻게 사정했는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하다. 지난달 동생이 사업이 어려워 쩔쩔매고 있을 때, 눈 한번 껌뻑이지 않았던 어머니셨다. 어머니는 하얀 봉투에 수표를 넣어 주셨다.
 다음날, 아내가 돈을 달라고 하였다. 와이셔츠 주머니에 있다고 하자 세탁기로 뛰어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을 시간도 없었다. 빨래는 온통 흰 종이가루로 덮여져 있었다. 세탁물은 깨끗하게 탈수까지 되어 있었다. 아내는 평소 빨래를 할 때 호주머니를 뒤지지 않는 버릇이 있다.
 아내는 벌써 눈은 젖어 있었고, 엉엉 소리도 냈다. 놀란 애들이 방안에서 뛰어 나왔다. 심각한 사태를 파악한 애들은 자기 방으로 숨어 버렸다. 한 달에 아르바이트로 오십 만원을 벌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삼천 만원이면 도대체 몇 년을 벌어야 하는가? 그 동안의 이자는 어떻게 하고. 답답했다. 아내는 빨래 사이를 뒤적거렸지만 수표는 보이지 않았다. 내일이 잔금을 주기로 약속한 날이다.
 인터넷을 뒤졌다. '수표분실'을 치니 보상받는 절차가 복잡했다. 신문에 공고를 하고 난 뒤  4개월 뒤에 판결을 받아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더구나 비용이 30%라니.
 그렇다고 저렇게 울고 있는 아내에게 핀잔을 줄 수도 없다. 한참이 지나자 아내는 지쳤는지 울음소리는 작아 졌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놓고 종이가루를 모으기 시작했다. 호주머니 하나하나를 뒤져가며 작은 조각까지 모으고 있었다. 종이가루를 모아 어쩌려고...
 얼마쯤 지났을까. 아내의 모습이 말끔했다. 세수를 한 모양이다. 아내는 빨래를 배란다로 가져가 훌훌 털기 시작하였다. 바닥에 모아 둔 종이가루도 미련이 없다는 듯 둘둘 말아 휴지통에 던졌다.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봉투는 가루가 되었지만 수표는 돌돌 말려 양말 속에 숨어 있었다. 세탁기 안에서 회오리 물결과 처절하게 싸움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지만, 찢어진 부분 하나 없이 색깔만 바랬을 뿐 누가 보기에도 수표였다. 특히 금액 부분은 유리테이프로 붙여져 있어 선명하게 보였다.
 다음날 출근을 하자마자 은행으로 달려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표를 내밀었다. 아가씨가 씨익 웃는다. “마음고생 많으셨죠. 가끔 세탁기에 돌린 수표가 들어옵니다. 수표가 돈보다 더 질겨요.” 하면서 입금한 통장을 내밀었다. 그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 들었다.
 합장을 하고 일어서는데 같이 들어온 꿀벌이 방석 위에서 나처럼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아직 준비된 예불이 끝나지 않았는지 내가 일어선 뒤에도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저 벌도 나만큼 많은 번민을 가지고 있나 보다 싶어 잠시 기다렸다. 예불을 마친 벌이 부처님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부처님의 황금빛에 비친 벌의 모습이 부처님의 모습처럼 인자하고 거룩하게 보였다. '열심히 일하는 꿀벌과 퉁퉁 부어 오른 진실한 아내여. 당신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나는 다시 합장을 하고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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