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러움에 대하여

오피니언l승인2019.11.20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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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자 국민연금공단
 
 
친구의 남편은 서예가이다. 그는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며칠 전 개인전 초대가 있었는데 작품 내용이 5년 전과는 많이 달랐다. 서체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고 경지에 오르니 마음속에 숙제로 남겨놓았던 수묵화에 또 다른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초대전의 주제는 ‘화(和)’였다. ‘和’라는 한자를 형상화한 작품이었으며 나는 운 좋게도 그 작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和’는 중용에서 희노애락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절도(節度)에 모두 알맞은 것이라 했다.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어 백발이 된 즈음에 거스르지 아니하는 너그로움으로 화(和)라는 화두를 정하였나보다.
 친구들과 모처럼의 만남이라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지천명의 언덕을 넘어도 수다꺼리의 화제는 시댁, 남편, 자녀의 벽을 벗어나지 못했다. 꿈의 연봉을 받는 친구조차 가까이 있는 가족과 갈등이 있었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이 인간관계인 것 같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보다.
 우리 집에도 화제꺼리의 주인공이 있다. 잘생긴 둘째아들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알코올 강도에 따라 귀가 시간이 달라진다. 중 3이 되기까지 I.my.me의 구분조차 몰라도 그저 해맑았던 소년이었다. 아들은 검정고시를 거쳐 남들보다 1년 빨리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시절 끝 즈음엔 영어스터디에서 리더를 할 만큼 실력을 갖추었고 엄마의 애살과 욕심으로 중국에 유학도 다녀왔다.
 가고 싶었던 직장은 학교와 다른 조건 때문에 포기하고,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은 직군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힘든 직장생활에도 아들은 한 번도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 고마운 마음이 든다. 문제는 술이다. 평소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 거하게 취한 날이면 “우리 김여사 최고지.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랑 결혼 할래”라는 과분한 친절로 미안함을 나타낸다.
 제 또래랑 어울리는 것이 좋을 텐데. 아들의 마음씀씀이에 미운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자녀는 부모에게 있어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이다. 이해도 용납도 안 되는 생활태도 때문에 내 생각의 틀 안에서만 아들의 세계를 보려했던 때가 있었다. 사랑이라면, 그것도 조건 없는 내리 사랑이라면 술도 화(和)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서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부끄러움이 든다.
 아들과 함께 성격유형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아들과 나는 예상과는 달리 성격이 전혀 다른 유형임을 알았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님을 수긍하고 그 후부터 아들의 행동을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었다.
  나는 왕복 40km 거리를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운전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짐작을 한다. 옆 차선에서 끼어들기를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앞차와 간격을 좁히는 사람, 신호가 바뀌자마자 크락션을 울리는 사람, 차선 변경 신호도 없이 끼어들어 놀라도록 하는 사람, 담배 피우고 난 후 꽁초를 창밖으로 던지는 사람 등 참으로 많은 진풍경들을 본다. 어떤 날은 양보하지 않은 차가 미워 일부러 그 차 앞으로 끼어들어 추월하기도 했다. 못된 마음에 미안하기보다 통쾌했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너그러움이 부족한 것이 후회가 된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결이 있다. 결은 성품이나 내면의 모습을 읽을 수 있는 바탕이 되고 또 다른 나를 표현하는 얼굴이다. 우리는 잘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높은 삶의 가치기준으로 자신이나 가족에게조차 잘 포장된 욕망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하였다. 지나치게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잠시 타인의 시선을 비켜가는 여유를 가지면 어떨까. 삶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오늘 만큼이라도 너털웃음으로 울타리 안에 갇힌 자신의 삶을 위로해 보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는 것 또한 모두 버리고 갈 허상인 것인지도 모른다. 해거름을 지켜보는 넉넉한 마음으로 자신을 받아들이면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이 조금은 너그러워 질 것이다. 짧은 가을 오후의 볕이 고마운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을 통해 더 큰 존재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답 없는 길을 걷는 여행객이다. 가쁜 숨 몰아 쉰 후 내가 어디에 서 있는 건지 나를 돌아보는 한 뼘의 여유를 갖자.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충분한’ 나를 칭찬하고 먼 여행 쉬엄쉬엄 오래 피어있는 꽃으로 먼 곳에 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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