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제를 지내며

오피니언l승인2019.09.18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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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화 농촌진흥청
 
삶은 이별이다. 이별의 대상은 나와 곁에 있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자연이든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 되면 이별을 하게 된다. 간혹 슬픈 이별도 있지만, 이별의 궁극적 이유는 살기 위함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이별은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만남을 기약할 수 없어 상실감이 크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살아남은 자가 감당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캐나다에서 어머니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내가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영원히 내 아이와 함께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세한 바람 한줄기만 스쳐도 쓰러질 것 같은 야리한 몸으로 어머니는 사투를 벌였다. 막내딸인 나에게 알리지 않고 암투병을 하며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었다.
 평소 막내딸에 사랑이 지극했던 어머니였다. 막내딸을 보지 않고 눈을 감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파리한 입술 안으로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면서도 생명의 끈을 쉽게 놓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은 내게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다가왔을 뿐, 현실이 되지는 못했다. 내 마음속으로는 어머니의 일방적인 이별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유학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해 드려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게 든든한 기둥이었던 어머니가 떠나버리면 혼자 살아 갈 용기가 없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면 겁이 나기도 했다.
 어머니의 부재의 흔적은 곳곳에 있었다.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붇듯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숨이 턱까지 올라 힘들었을 때, 텅 빈 냉장고를 바라보고 서 있을 때, 부모를 기다리다 지쳐 혼자 자고 있는 딸애를 보았을 때 그때마다 어머니가 그리웠다. 그럴 때면 맥없이 주저앉아 가슴을 후비며 울고 또 울다, 무턱대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 하신 후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때마다 잔인한 대답만 들려올 뿐 어머니는 흔적조차 없었다.
 나는 지금 스님의 등이 보이는 법당 한 귀퉁이에 앉아 있다.  오늘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마무리하는 천도제를 지내는 날이다. 스님은 어머니를 위해 하안거 동안 극락왕생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오늘 천도제는 스님의 기도를 마무리하는 제사인 셈이다.
 음력 7월 15일의 한여름에 천도제가 시작되었다. 스님은 ‘나무아미타불’을 첫 마디로 진언을 한다. 어머니의 영가를 모시기 위해서다. 무겁고 굵직한 목탁 소리와 쩌렁쩌렁한 낮은 염불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져 절 도량을 애잔히 드리우고 있다. 이윽고 기운 하나가 이글거리는 한 줄기 태양빛을 타고 영가 옷과 신발을 빌려 병풍 뒤로 들어선다. 병풍 뒤 욕실에서 어머니는 생전에 지은 업을 씻고,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불보살 앞에 선다. 그간의 정성이 차지게 모여들길 바라며 고봉으로 쌓은 밥과 순탄한 극락으로의 뱃길이 되라고 미역국을 올린다. 극락을 향한 길이 조금 더 편해지기를 간절히 담아 다섯 가지 채소 무침과 과일들을 준비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법당 보살님이 내미는 술잔을 받았다. 어머니에게 드리는 술잔이다. 향불 위에서 우측으로 빙그레 세 번을 돌린 후 술잔을 올렸다. 그리고 세 번 절을 한다. 방석에 이마가 닿도록 납작 엎드린 내 초라한 등을 향해, 스님은 나직이 말씀하신다. ‘어머니를 보내지 않으면 구천을 떠돌게 하는 불효를 저지르게 되니, 이제 내려놓으라.’고 한다.
 나는 십 수 년 동안 어머니를 보내지 못했다. 가슴에 꽁꽁 담아 지냈다. 이번 천도제는 이런 나를 위해 12년 만에 지내는 것이다. 스님은 어머니에 대한 나의 미혹한 마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법문을 서글프게 읊조리고 있다. 몇 차례 술을 더 올리고 나서, 나는 어머니 영가 옷가지가 담겨 있는 보자기를 품으로 안았다. 그리고 극락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간다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따라 법당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녔다. 절 도량 굽이굽이 도는 동안,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얼굴로 영가 옷을 소각하는 장소인 소대(燒臺) 앞에 멀거니 서 있었다. 스님이 보자기를 받아 소대 안에 넣고 불을 붙인다. 마지막이 아쉬운 듯 벌건 불꽃이 잿빛 나비가 되어 너풀너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뒤를 돌아보았다. 남편 옆에서 딸은 사그라지는 영가를 향해 합장하고 허리를 연신 굽히고 있다. 철부지 아기였던 딸이 갑자기 태산이 되어 우뚝 거기 서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머니를 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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