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숙 전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이 질문에 대한 현재 시점의 대답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아니다. 우리 예술가들은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평등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참 좋다. 어감이 좋은 정도가 아니라 그 뜻은 어마어마하게 좋다. 어마어마하다는 표현이 상당히 과장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표현이 마치 뻥튀기와 같이 과장성이 높은 부사라는 점을 곧 인정한다. 그러나 품사로서의 부사는 어차피 동사와 형용사를 과장하거나 축소하거나 혹은 가장 적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평등’이라는 용어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녔고,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좋다고 하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다.
 학교에서 배운 기회 평등과 결과 평등의 구분은 평등한 사회로 가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할 때 고민해야 하므로 논의가 심화되어야 한다. 이 자리에서는 일상 속의 평등, 예술계의 평등에 국한해서 나누고자 한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현대를 살아가는 ‘진지하고 진실한’ 지구인이라면 우리 각자의 삶 전체를 통찰하고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자신의 의무와 노동에 대한 성실한 자세, 자기애와 자기 권리 표현에 대한 당당한 자세, 끝으로 타인이나 상대방을 존중하는 인격적 마음과 행위라는 세 가지 차원을 고려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보면 이 세 가지 차원은 모두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다양한 표현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평등’은 내가 살고 있고, 일하고 있는 우리 지역뿐 아니라 지구촌과 우주를 다 접수해도 될 만한 단어이고, 그만큼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철학이고, 늘 가까이 해야 할 진리이고, 친구이다.  
 우선, 우리의 의무와 노동에 대한 성실한 자세에 앞서 자기애와 자기권리 표현에 대한 당당한 자세를 살펴보자. 과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좋은 자리,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만큼 평등하게 우리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가라고 자문자답해보자. 발전을 지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오히려 그 발전의 정점에 있는 우상의 이미지에 눌려서 자신을 소홀히 여기거나 소홀하다 못해 좌절하고, 우울한 존재, 없어져도 좋은 존재라고 여기는 경우는 없는지, 그때 우리는 평등하지 못한 관계 속에서 생활하고, 그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 스스로를 종속시키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 자신을 스스로 평등하게 대접해야 하는 과제가 대두되는 이유이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의무와 노동을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가. 발전을 지향하면서 현재의 의무를 유보하고 타인에게 의무와 노동을 떠넘기고 있는 지점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의무 앞에 평등한지의 여부는 자기애와 자기 권리를 당당하게 찾는 것만큼 평등하게 중요하다. 셋째, 타인이나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이 의례적인 경우가 참 많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주기만 하면 평등성을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경청을 넘어서 실천하거나 기꺼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개입하거나 기꺼이 절제할 것들이 있을 것이고, 그 단계까지 가야 진정으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리라.
 사회나 관계로부터 부여받고 있는 혹은 우리 스스로 선택한 역할이나 기능에 있어서  조직 내에서의 위, 아래의 개념은 생존 혹은 효율적 성과를 위해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시점에서도 우리는 진정 평등한지 점검해봐야 한다. 
  예술이나 감동이나 인정이나 사랑이나 성공이나 위로라는 단어들이 포함하고 있는 성과와 아름다움이 무척 바람직하지만, 그 모든 아름다운 단어들에서도 평등의 의미가 빠진다면 그 성과와 아름다움은 곧 사라질 안개이며, 곧 사라질 비눗방울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승자 독식의 세상이라든가,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스토킹이나, 위로한답시고 상처를 끄집어내어 2차 가해를 저지른다든가, 예술인이라는 경력을 쌓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후배 예술인들의 작품을 비웃고, 지배하고 학대한다든가, 성공하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유보하는 의무 유기들은 제 아무리 높은 가치를 지향한다고 해도, 그 명분의 겉치레 아래 평등하지 못한 관계와 관점을 당연시하는 지배욕과 권력욕의 악성을 방치하는 것이다.
 후배 예술인들은 그러한 악성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며, 그런 관계 속에서 가까스로 성공한다면 그러한 악성은 대물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평등하지 못한 관계를 당연시 하는 악성을 조용히 그러나 엄격하게 끊어내야 한다. 무척 간단한 일일 수도 있다. 불평등이 대물림 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고귀하게 여기고, 우리 노동을 고귀하게 여기고, 상대방을 고귀하게 여기면 된다. 고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눈을 뜨고 있는 현장에서 고귀하게 대접하면 된다.
 지배욕과 권력욕이 꿈틀대면 고귀한 평등을 같이 누리기 위해 그 악성을 알아차리고 그 순간 절제하면 된다. 평등을 위해 분투하는 오늘 하루, 우리 지역, 우리나라를 꿈꾸자. 평등한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정착되기 위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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