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 지도자 125년만의 영면

오피니언l승인2019.06.02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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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동학농민혁명을 떠받친 기본 사상은 ‘인내천(人乃天)’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고 생각된다. 인내천은 사람이 하늘이라는 것이요, 보국안민은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를 토대로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인내천에서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반봉건을 지향했고, 보국안민에서 일제의 침탈에 저항하고 민족주권을 지키려는 반외세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고 중심이 되었던 지역이 전북이다. 고부농민봉기가 전국적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황토현에서 대승을 거두고 전라도 일도를 석권하여 관민협치의 새장을 열어간 중심이 전북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전국적인 항쟁이고, 또 농민혁명의 역사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외연을 넓혀가야 간다. 하지만 그 중심에 전북이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동학농민혁명은 전국적인 것이었고, 그 중심은 전북이었다. 앞으로 전국적인 것과 지역적 측면, 이 둘을 어긋나지 않게 잘 접목해 가야 할 것이다.
올해 2019년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 황토현 대승일 5월 11일로 제정되어 처음으로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일 제정을 놓고 오랜 기간 지역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은 뜻을 같이했다. 기념식이 서울에서 열리는 등 기대에 못미친 점이 있으나, 이는 앞으로 풀어가면 된다.
엊그제 2019년 6월 1일 전주역사박물관에 모셔져 있던 동학농민군지도자 유골이 완산칠봉 투구봉 꽃동산에 자리한 녹두관에 안장되었다. 1996년 일본에서 국내로 모셔온 지 23년이 지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오랜 기간 안장처를 찾아드리지 못한 것에 죄송함을 금치 못했고, 이제라도 안장한 것에 대해 안도하며 영면을 기원했다.   
안장식은 이날 아침부터 거행되었다. 8시 30분 전주역사박물관에서 발인식을 가졌다. 무명의 농민군 지도자 유골이 박물관 수장고에서 모셔져 오고, 이제 이곳을 떠나 안식처로 모시게 됨을 영령께 고하였다. 발인식을 마치고 운구차로 풍남문을 향했다. 
전라감영에 내려, 봉건통치의 중심이자 폐정개혁을 이끈 대도소를 들르는 것을 대신하고, 농민군들이 입성했던 풍남문으로 가서 ‘호남제일성’ 편액을 뒤로하고 노제를 지냈다. 우리 소리와 춤이 같이 했다.
풍남문부터 녹두관까지는 상여로 나갔다. 상여소리가 앞에서 이를 이끌었다. 만장이 늘어섰고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도 같이했다. 초록바위 앞에서는 농민군들이 폐정개혁을 외치는 퍼포먼스도 진행되었다.   
장지에 도착해 녹두관 앞에서 진혼식이 거행되었다. “지금부터 125년 전, 저 갑오년의 봉기에 앞장서 나라의 자주와 창생의 구원을 위해서 싸우다 목숨을 바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이신 임이시여”로 시작되는 한승헌명예위원장님의 추모사를 비롯해 영령께 올리는 마지막 인사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언덕배기를 올라 추모관인 녹두관에 안장되었다.
비록 안장식이 더 성대하게 치러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볼 수 있지만, 이만큼이라도 성대하게 안장처에 모신 것에 대해 그간의 미안하고 죄송함을 덜 수 있었다. 안장식을 주관한 전주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긴 세월이었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한국동학당수괴’라고 새겨진 유골을 발견하고 이듬해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국내로 모셔왔지만 이제껏 이런저런 이유로 영면에 들지 못했다. 전주 봉안을 추진하면서는 진도의 이의 제기도 있었다.
이제 이 모든 일들을 뒤로 하고 순절한 지 125년만에 무명의 농민군 지도자가 영면에 들었다. 봄이면 철쭉이 만개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투구봉의 꼭대기에, 전주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자리에 안식처를 마련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와 정신은 전북의 정체성이고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무명의 동학농민군 지도자 영령이시여, 그간의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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