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스승 홍석영의 단편소설을 한데 모았다. <홍석영 단편전집>(모악)이 그것이다.
  원광대학교 출신 소설가 모임인 ‘원광소설가족’이 스승의 미수(米壽)를 기리고자 그가 평생에 걸쳐 쓴 단편소설 49편을 엮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시인과 소설가를 길러낸 선생이자 난폭한 현대사를 고스란히 거친 삶을 응시하는 소설가의 작품세계를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뜻깊다.
  원광소설가족은 30여년 동안 매년 두 차례씩 스승과 제자가 동행해왔으며 여기에는 윤흥길, 박범신, 양귀자, 최기인 등이 포함돼 있다. 그들에게 교수이자 작가였던 홍석영 씨의 자리는 크고 넓다.
  소설가 윤흥길은 “선생의 필명 ‘석영’을 두고 줄곧 의문을 느꼈다. 왜 돌인가. 돌이면 그냥 돌일 것이지 어째서 돌의 그림자란 말인가. 불쑥 물었더니 험한 세상을 돌처럼 묵묵히 견디고 싶다는 시를 읽고는 느낀 바가 많았으며, 자신은 돌보다 더 존재 없는 돌 그림자로 한 세상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고 하셨다”면서 “그의 인생관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불행한 역사 속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문인으로서는 어떤 모습일까.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다가 큰 집에 하숙하고 있던 일본인 선생 노부하라를 만났고 그가 건넨 시집 2권을 읽었다. 잇싸(一茶)가 6살 나이에 지었다는 시 중 ‘야윈 개구리야 지지 말라 잇싸(一茶)가 여기 있다’는  강렬하게 남았다. 
  1944년 전주 사범학교에 들어간 후 해방 이듬해 시인 김해강 선생의 지도 아래 교지 <태양>을 발간, 창간호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고 한 권 됨 직한 시작을 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신변의 위협을 넘겨야 했던 뼈아픈 기억들을 온 몸으로 겪었지만 역사적 사건들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심지어 유쾌하게 돌아본다.
  평론가 오하근은 “악착같이 파고들어 사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빠져나와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고 숙명론자가 될 수밖에 없는 나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설가 양귀자도 “당신에게 닥친 불행이나 괴로움에 대해 펼쳐놓고 동의를 구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개인의 고통은 누설하지 않겠다는 게 아마도 선생님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선생님은 당신의 생애를 짐짓 혹은 더욱 유쾌하게 회고하셨다. 들어 유쾌할 수 없는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하고 예전에도 그러하셨다”고 밝혔다.
  본명은 홍대표며 익산에서 태어났다. 전주사범학교 재학 시절 동기인 하근찬, 1년 후배인 신동엽과 함께 문학을 공부했으며 1960년 소설 <황혼> <막다른 유예>가 <자유문학>에 추천 완료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원광대 교수, 문리대 학장, 인문대 학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단편소설집 <이적의 밤> <피서지> <우리들의 대부님> <바람의 사슬>과 장편소설 <불꽃제단> <숲에서 나무 되어> <정여립>  등이 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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