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년에 걸친 백제사는 세 시기로 나뉜다.

먼저 한성백제는 기원전 18년에서부터 기원후 475년까지의 기간이다. 한성백제라 불리는 이 시기에는 나라를 세우고 그 기틀을 튼튼히 했다. 지금 서울에 도읍을 두고 세력을 키워나갔다. 특히 제13대 근초고왕 때는 백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고구려와의 잇단 전쟁에서 이기고 남쪽 마한 세력을 편입시켰으며 가야에도 진출해 넓은 세력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수도가 함락되고 개로왕까지 전사하면서 웅진으로 천도를 결정한다.

웅진백제는 475년부터 538년에 이르는 기간이다. 웅진 즉 지금의 공주는 금강을 끼고 있어 적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곳이었다.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혼란이 있었지만 동성왕과 무령왕 대에 이르러 안정을 되찾았다.

그 다음은 538년에서 660년에 이르는 사비백제다. 성왕은 사비 그러니까 지금의 부여로 다시 천도했다. 바야흐로 백제는 중흥기를 맞이했다. 활발한 정복사업이 벌어지고 문화도 융성한 시기였다. 국제적인 해상활동도 활발해졌는가 하면 왜에 불교를 전파하고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신라가 당과 손을 잡고 백제를 침공하면서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전북은 이런 백제사의 흐름 속에서 한 축을 형성했다. 사비백제 때 현 고부 땅에 중방이 설치돼 지방행정의 중심이 됐으며 무왕 시기에는 익산 왕궁리 일대에 왕도가 만들어졌다. 백제 멸망 후 부흥운동도 현재 부안지역인 주류성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비록 공주나 부여에 치여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백제사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완주 봉동읍에 있는 배매산에서 호남 지역 최초로 한성백제시대 토성이 확인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라문화유산연구원이 최근 발굴 조사한 바 이 토성은 산 정상을 중심으로 봉우리들을 둘러싼 테뫼식 성으로 여기서 나온 유물과 축성 기법으로 보아 한성백제시대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삼족토기 등 유물들은 기존 한성백제 유적지에서 나온 것들과 일치하며 삭토기법과 나무 기둥 구멍 나열 등 성을 쌓은 기술도 역시 한성 백제 때 성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배매산성 발굴은 전북 백제사가 결코 변방이 아님을 말해준다. 또 백제정신이 전북의 정체성과도 깊이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후일 후백제가 전주에서 세워지고 고부를 중심으로 동학혁명이 발발하는 등 백제는 전북의 정체성 뿌리라고 할 것이다. 이번 한성백제시대 배매산성의 확인은 그런 견지서 깊은 뜻을 갖는다. 이 기회에 전북 내의 백제 유적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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