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만난 5.18 민주유공자 김완술(56)씨는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다. 그는 유독 “부끄럽다”고 했다. 1980년 5월 하늘로 떠나보낸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의 가슴 한편에 자리 잡아 30년이 지난 지금도 강하게 짓눌렀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이 힘겹고 먹먹한 나날이었다.
1980년 5월 18일 0시, 5.18 최초 희생자로 알려진 이세종 열사가 변을 당하던 당시 김완술씨도 전북대학교 제1학생회관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함께 군사 통치를 반대하며 민주주의 운동을 벌였다. 1980년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씨는 신군부 세력에 군사독재가 창궐하는 세태를 보고 민주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뒤 학교에 공수대원들이 들이닥치면서 무차별한 폭력에 희생양이 됐던 그다. 당시 농성장에서 공수대원들로부터 무분별한 폭력을 당하면서 머리 부위는 찢어지고 허리를 다쳤다.
김씨는 “농성장에 있던 30~50명의 학생들이 굴비처럼 엮여 끌려갔다. 햇볕도 들지 않는 경찰서 지하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다 헌병대와 보안대로 이리저리 옮겨졌다”며 “끌려온 사람들로부터 간간히 들려오는 바깥소식은 참혹하고 끔찍했다”고 떠올렸다.
5.18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알리고 유공자들의 권익을 위해 온 세월을 보낸 그는 37주년을 맞은 올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새롭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그간의 ‘5.18 홀대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5.18 구속부상자회 김완술 전북지회장은 “5.18 민주화 운동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자발적인 민중 운동의 소산이다.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투쟁한 수많은 민중들의 역동적인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한다”며 “촛불 민심 이후 민중, 서민이 간절히 원하는 민주주의 실현은 지금이 출발점이다”고 말했다.
한편 5.18 구속부상자회 전북지회는 17일 전북대학교에서 5.18 민주화 운동 37주년과 이세종 열사 추모식을 가졌다.
/권순재기자·aongl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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