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상고사에 대한 몇 안 되는 기록 중 하나는 환단고기다. 위서 시비로 얼룩져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관심이 크다. 환단고기는 삼성기를 비롯해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 네 권을 묶은 책으로 1911년 계연수가 편찬한 것으로 돼 있다. 이 책을 그의 제자 이유립이 보관하고 있다가 1979년 필사본으로 남긴 것이 오늘날 유통되는 환단고기다. 세상에 더 잘 알려진 계기는 일본인 가시마가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본문도 함께 실었던 데서 찾을 수 있다.
  환단고기가 그리는 한민족의 모습은 웅대하다. 간단히 간추리면 한민족의 역사가 오천년이 아니라 1만년에 달한다는 것이고 그 강역도 중국 대부분을 포함해 시베리아 벌판과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광대한 범위였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기원전 7197년 한민족은 환국이라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환국의 군주는 환인이라 불렸고 12개의 작은 나라가 뭉친 연방 국가였다. 그 영역은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로 어머어마한 넓이였다. 환국에 이어 기원전 3989년에 일어난 것이 배달이다. 도읍은 태백산 신시. 군주는 환웅이라 일컬어졌다. 그리고 다시 기원전 2333년 왕검이 등장해 조선을 세웠다. 도읍은 아사달이고 군주는 단군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개천절을 10월3일로 한 것도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고조선은 그러나 여러 이유로 멸망하고 결국 부여로 변했고 다시 고구려로 그 법통이 이어지는 게 환단고기의 서술이다.
  그러나 환단고기는 주류 사학계로부터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선행 사료가 없는 데다 근거도 희박해 20세기에 만들어진 위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한 교수가 석사과정 강의에 환단고기를 강의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교수는 ‘광개토왕비에서 보는 고구려 천자문화’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환국의 존재와 고조선 이전 역사 등을 환단고기에 입각해 거론했다. 이에 학생회 등이 나서서 졸업을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하는데도 비과학적 내용이 주를 이룬 이번 강의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교수는 지난해 말에도 포스텍 부설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비슷한 내용을 강의하려다 학생회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주류 사학계의 철저한 외면에도 불구하고 환단고기에 대한 여러 과학적 연구들이 줄을 잇고 있다. 비록 신화적 성격이 짙게 깔려 있지만 철저하게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는 게 받아들이는 쪽의 입장이다.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역사 흐름을 파악한다는 견지에서도 환단고기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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