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실향, 타향, 망향을 반찬 삼은 서럽고 아린 레시피.

출판사 모악이 모악시인선 2로 박기영의 두 번째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펴냈다. 첫 시집 ‘숨은 사내(1991)’ 이후 25년 만에 출간하는데다 실린 50편 모두 미공개작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충남 홍성 출신인 시인은 평안남도 맹산 출신 포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떠돌다 대구에 정착했고 달성고 2학년 당시 중퇴, 숱한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면서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우리 세대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개인시집 및 장정일과의 2인 시집 ‘성 ‧ 아침’을 발간했다. KBS 방송작가로 일했으며 현재는 충북 옥천에 정착해 옻을 키우고 있다.

중학교 시절 김수영 시인의 방식인 ‘삶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을 몸으로 시를 쓸 수 있다고 해석했고, 1979년 열일곱 살의 장정일을 만나 그가 첫 시집을 낼 때까지 문학적 스승 역할을 했다. 덕분에 김수영의 온몸과 장정일이 지닌 묘한 울림을 두루 지닐 수 있었다고.

특유의 반동적이고 불온한 시적 세계를 일군 그는 시집을 통해 음식을 말한다. 아버지의 음식이 간직하고 있던 세계를 다룬 ‘1부 낭림산맥을 그리다’, 젊은 시절을 지배한 음식들을 정리한 ‘2부 한 마리 버들치처럼’, 주변 사람들의 음식을 말하는 ‘3부 부용대 백사장’, 음식에서 발견한 깨달음의 세계를 모색한 ‘4부 호두나무 과수원 아래’가 그것이다.

어육계장, 꿩냉면, 정구지김치, 감자수제비, 청어과메기 등 다양한 음식들이 잇따르지만 이면에는 실향민으로서의 정체성이 오롯하다. ‘고향’, ‘본적’ 같은 개념과 감성이 모호해지고 있는 가운데 1960년대 혹은 열 네살 무렵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특히 옻의 독이자 약인 식물의 특성을 이용해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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