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스펙 쌓기도 짧은 하루, 느린 호흡의 시를 읽는다는 게 사치라고 여겨질지 모르겠다. 그 느린 사치를 음미하는 일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면,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들을 일깨운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글귀들의 짧지만 강렬한 울림은 쓰는 이를 넘어 읽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1975년 신경림 시인의 ‘농무’를 시작으로 40년간 시를 소개해 온 창비시선이 400번을 맞아 기념시선집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를 펴냈다. 박성우, 신용목 시인이 창비시선 301번부터 399번까지 각 시집에서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따라 읽을 수 있는 시 한편씩을 선정했으며 두 권을 낸 시인의 경우 한 권만 택해 수록했다. 모두 86편.

엮은이들은 “단시라 불러도 좋고 한 뼘 시나 손바닥 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며 “독자들이 가능한 한 여유롭게 시와 마주 앉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 짧아서 쉽다는 게 아니라 가파른 길을 짧게 나눠 걸어가면 어떨까 하는 기대 말이다”라고 기준을 밝혔다.

시단을 이끌어가고 있는 다양한 시인들의 면모를 담았는데 고은 신경림 김용택 도종환 김사인 나희덕 장석남 정호승 이영광 함민복 문태준 진은영 송경동 등 각자의 개성과 성취가 뚜렷한 이들의 작품부터 강성은 이제니 김중일 이혜미 주하림 신미나 안주철 박소란 안희연 박희수 등 젊은이들의 참신한 결과물까지 고르게 만날 수 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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