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가구 60여명의 주민 대부분이 65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돼 있고 새로울 건 없지만 오순도순 조용히 살아가는 곳, 충남 경계에 자리 잡은 완주군 화산면 상호마을이다. 범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옛 지명 버머리 마을이 더 익숙하다.

세상에 이름을 떨친 이도 없고 역사에 길이 남을 흔적을 만든 이도 없으나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특별하지 않은 이가 없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애가 하나, 둘 모여 현대사를 관통하는 생활사가 됐다. 상호마을공동문화조성추진단(단장 조신호)이 펴낸 상호마을 주민생애사 ‘버머리 사람들’.

완주에서 지역을 기록하고 있는 미디어공동체완두콩협동조합이 복사꽃 피는 봄날부터 흰 눈이 펑펑 내리는 한 겨울까지 2년간 취재해 발간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해방과 6.25전쟁을 몸소 겪으며 식구들을 건사해야 했던 지난날을 중심으로 유년시절, 첫 사랑의 기억, 외국에서 일했던 경험, 결혼하던 날, 인생역전, 고향으로 되돌아 온 사연 등 30여개의 이야기가 잇따른다.

마을에서만 70년을 보낸 최고령의 지종금(86) 할머니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스무 살 신랑에게 시집가던 날을 회상한다. 시악시 모집(정신대) 보낸다는 말에 놀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편에게 시집 와, 처녀 적 익힌 길쌈솜씨를 발휘하는 한편 논밭을 가리지 않으며 9남매를 키워냈다. ‘낭자아지매’라고도 불리는데 성근 머리를 받쳐주기엔 무거워 보이는 은비녀는 어르신의 오랜 동무이자 소박한 위엄이다.

김영식(78)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 공사장 막일을 하며 가정을 건사했다. 아내의 암이 재발되자 비용 마련을 위해 남원 건설현장 감독관으로 가게 됐고 업체 사장 눈에 띄어 이역만리 리비아까지 다다랐다고.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들과 요양이 필요한 아내가 눈에 밟혔지만 빚더미를 나 몰라라 할 순 없어 1년 반을 일했다. 돌아온 후의 고초 또한 함께한 노부부의 미소는 그래서 더 깊다.

권영진(82)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제주도 경비중대에서 군 복무했다. 부산에서 한 달 간 교육을 받았는데 피난민들과 징집된 청년들, 외국 군인들이 뒤엉켜 난장판이었고 제주도로 갈 날만을 기다렸다. 38개월을 복무하고 돌아왔음에도 제주도는 기회가 생기면 찾아가는 소중한 곳으로 아로새겨졌다.

고남철(58)씨는 20여 년 전 소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송아지 한 마리에 300만 원씩 쳐줬지만 사료값은 치솟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돼 한우값이 폭락했다. 50마리에서 20마리로 수도 줄었고 인삼과 벼농사도 녹록치 않으나 쓰디쓴 인내가 다디단 열매로 돌아올 걸 그는 안다.

조신호 단장은 “비록 평생 땅만 파고 산 촌무지렁이지만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다.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어리고 젊었던 자신을 마음껏 추억했다”면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마을주민들의 생애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다행이고 또 영광이다”라고 말했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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