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인 신정일은 과거 누군가처럼 산천을 유람하는 건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데 동의한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으로 수없이 많은 책들이 펼쳐진 도서관이자 역사의 유물들이 진열된 박물관인 ‘길’을 걷고 또 걸었고, 삶이란 걸 깨달았다.

‘새로 쓰는 택리지’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조선을 뒤흔든 최대의 역모사건’ ‘한국사의 천재들’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다’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을 비롯한 50여권도 펴낼 수 있었다. 30여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다보니 모르는 곳도 없고 특별히 마음 가는 곳도 생겼다.

하루나 이틀 머물다 떠나는 곳이 아닌, 자연‧이웃과 평생을 더불어 살고 싶은 전국의 마을 41곳을 택해 ‘꿈속에서라도 꼭 한 번 살고 싶은 곳(소울앤북)’을 출간한 건 이 때문.

첨단을 걷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가장 그리워하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자연의 품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에도 가장 참혹하게 자신의 터전을 파괴하는 유일한 동물이 돼 버렸다.

옛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일가를 이루고 마을을 꾸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먹고사는 데 필요한 자리뿐 아니라 산자락과 강줄기, 햇볕과 그늘의 위치까지도 마음에 둬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삶터는 어떨까. 산업화와 도시화, 부동산 투기에 찌든 옛 마을들은 이미 마음의 고향으로서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고 고유의 전통과 풍습, 따뜻한 인심을 간직한 곳 또한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근래 들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후세들을 위해 땀 흘리고 소요하며 살고 싶은 젊은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책은 글쓴이의 소망과 최근 바람들을 반영해 41곳의 흔적, 사상, 역사의 궤적까지 오롯이 담아낸다.

‘마음이 먼저 머무는 자리’ ‘천하의 기운을 품은 길지’ ‘선조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 ‘세월이 지나간 자리’로 나눠 소개하는 가운데 지역에서는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흰바우마을, 부안군 진서면 변산 우반동, 김제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 부근 4곳이 마음이 먼저 머무는 자리로 꼽혔다.

거북바위가 있어 구미리라 이름 지은 곳은 자연이 빚은 명당 중 하나다. 섬진강 주변 적성면, 동계면, 인계면의 퇴적 암류와 응회암 지대 깊은 골짜기를 흘러가는 강을 특별히 적성강이라 부르는데, 물이 맑아 소녀의 눈동자 같다고 하며 섬진강 물길 중 가장 경치가 아름답고 한적하다고.

청도리는 미륵 신앙의 본고장이자 동학의 본산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곳이다. 강증산과 차경석이 그러했듯 청도리 일대에 머물며 귀신사를 거닌다면 마음이 한결 풍요롭고 여유로울 터다./이수화기자‧waterflower20@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