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조선 8명창 중 한 사람인 권삼득은 양반집 자제였다. 안동 권씨가 집성촌을 이룬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가 그의 출생지다. 내로라하는 향반이었던 그의 집안에서 소리꾼이 배출됐다는 사실은 아주 의외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싫어하고 오로지 판소리에 심취했다. 완고한 집안에서 볼 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급기야 문중에서는 권삼득을 죽이기로 결정했다. 당시 권세 있는 집안은 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사사로이 형을 부과할 수 있었다. 멍석에 만 다음 작두를 준비하고 있던 찰라 권삼득의 모친은 죽기 전에 그에게 소리나 한 바탕 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마지못해 승낙한 집안 어른들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권삼득의 애절한 소리가 그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결국 문중에서는 그를 죽이지 않는 대신 족보에서 지우고 집안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했다.
  그 후 그의 행적은 눈부시다. 도내는 물론 전국을 무대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가 소리를 할 때면 수천 군중이 운집했다고 한다. 당시 유명했던 백이방의 기록에 의하면 김제 백산에서 수천 군중을 모아놓고 소리를 하던 권삼득을 전라감사의 명으로 전주감영으로 초빙했다. 선화당을 쩌렁쩌렁 울리는 권삼득의 소리에 감동한 감사는 곧 감영 인근에 살게 했다. 안정을 얻은 권삼득은 전주 다가정에서 정기적으로 소리판을 벌였는데 그 때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후에도 전라도 곳곳 수령들이 그를 모셔다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권삼득은 특히 설렁제로 이름 높다. 씩씩하고 경쾌하며 호탕한 소리다. 흥보가에서 ‘제비후리러 가는 대목’과 춘향가의 ‘군노사령이 나가는 대목’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권삼득을 기리는 권삼득 명창 기념사업회가 이달 출범한다고 한다. 사단법인 형태를 띤 이 단체는 앞으로 관련 자료 수집과 고증을 통해 권명창을 재조명하고 농어촌 문화교실과 토요문화학교 등을 열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판소리와 사물놀이 등 전통 음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높이고 감상능력을 제고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사실 판소리는 대중화에 한계를 맞고 있다. 워낙 서양음악이 기세 등등하다보니 판소리를 즐기는 계층은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만 법고창신이라는 말에서 보듯 우리 고유 음악을 살려야 새로운 음악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런 견지서 권삼득과 같은 문화인물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념사업회의 활동을 통해 자꾸만 힘을 잃어가는 판소리가 중흥되면 더 없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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