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 일본 아베총리의 미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의 후폭풍으로 국내 언론이 일본의 식민지침략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 부족, 미일방위협력지침, 일본자위대 파병 가능성 등에 대해 연일 보도하는 와중에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필자가 수년 동안 재직했던 미국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의 아시아미술관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내용인즉, 아베총리가 4월 29일 미의회 연설을 마치고 미일협력을 기념하는 저녁만찬회를 아시아미술관에서 주최했고, 이 자리에서 미술관에 백만 달러를 기부하고 줄리언 래비 관장에게 욱일훈장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는 것이다.
아베총리는 만찬회 기념사에서 연간 전세계 방문자와 관람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는 스미소니언박물관의 국립아시아미술관인 프리어·새클러미술관이 오랫동안 일본문화를 미국에서 증진시키는 역할과 미일교류의 통로가 되어온 공헌에 감사하며, 차후에도 문화예술교류의 진정한 파트너가 되기 바라는 취지라고 밝혔다는 내용이었다.
1875년에 일본정부가 처음 제정한 욱일장은 국제관계, 문화, 공공 영역에서 공헌한 민간인들에게 수여되는 최고 훈장으로서, 2015년 올 한 해 동안 전세계 85명의 인사들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아베총리의 기금은 스미소니언에서 일본문화예술 확산을 위한 일본관련 전시, 공연, 행사, 연구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메일을 읽으면서, 일본이 훈장 하나, 그리고 100억도 아닌 10억원을 가지고 누리는 극대화된 홍보효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이러한 문화외교와 홍보방법은 백수십년 전에나 지금에나 한결같이 활용되고 있고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1860년대부터 지난 150여 년 동안 문화예술을 활용한 대단히 치밀하고 유효한 외교정책을 지속해왔고, 이를 곧 장·단기적인 정치적·경제적 국익으로 이끌어냈다. 심지어 1945년 2차 대전 종료 직후에도,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불과 수년 전까지 적이었던 ‘일본 붐’과 ‘젠 붐’을 확산시키는 놀라운 성과들을 남겼다.
우리도 안하는 것은 아니다. 재작년에 필자가 위원으로 있는 스미소니언의 국립미국미술관에서 관장과 담소하던 중, 엘리자베스 브룬 미술관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순방 중에 백남준 회고전 관람차 방문했다면서 같이 찍은 사진과 기록을 컴퓨터에서 찾아 보여주었다. 친절하게 그 후 청와대에서 보내왔다는 국내 언론에 실린 관련기사 링크까지 필자에게 전해주었지만, 정부차원에서 구체적인 문화예술교류를 위한 후속조치는 없는 것으로 안다.
필자가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근무하던 당시에도 중국이나 일본미술 전시장의 3분의 1 크기에도 못 미치는 한국미술 전시공간 확장과 한국고미술 전담 학예사 채용을 위해서, 스미소니언 총책임자이던 헤이먼 장관이 국내외 여러 창구를 통해 애를 썼지만 결국 필요한 지원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그 후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존 전시공간의 리노베이션을 도와주는 수준에 그쳤다. 한국미술 전담 학예사가 없어서 현재까지도 필자의 친구이자 재미일본인 3세인 일본미술 전담 학예사가 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의 문화외교는 일본정부와 기업들이 해외에서 일본문화예술 전시가 있을 때마다 자원해서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해주고, 이를 자국의 이미지만들기 정책 및 정치적·경제적 이익과 효율적으로 연결시키는 것과는 큰 간극을 보인다.
투표권이 있는 국민, 도민, 시민들을 위한 단발성의 국내 문화예술 행사에 투자되는 막대한 액수에 비해 한국의 대외 문화외교는, 작금에 다소 향상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너무도 초라한 성적표이다.
우리 기업들 중에도 오랜 동안 지속적인 후원을 담당 해온 삼성에 이어 최근 현대차 등이 보다 적극적인 행보로 나서고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의 문화외교와 문화경제 추진 수준은 아직도 마라톤 경주의 시발점에서 멀리가지 못하고 있다.         
/ 조 은 영 (원광대학교 미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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