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동학농민혁명의 맥은 항일독립투쟁, 4.19 혁명, 5.18, 87 민주항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 ‘세월호’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참사다. 침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위에 희망의 돛을 달자’ (전시 서문)
전북민족미술인협회(회장 이기홍) 정기기획전 ‘갑오세 통일로’ 전이 10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해마다 현실참여 메시지를 담은 정기전을 열었던 만큼 올해도 세월호 참사와 밀양 송전탑 투쟁이 빠지지 않는다.
한국화가 김윤숙은 전봉준 생가 답사 길에 만났던 600년을 살아온 고목에 주목했다. 작품 ‘살아 있다’는 고목 그림 주변에 물고기 부적들을 설치,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 역시 이 고목처럼 오래 살아있을 거라는 치유와 긍정의 메시지를 담았다.
서양화가 강현화씨의 ‘사발통문-갑오, 꽃피우다’는 작가가 하나하나 수채물감으로 그리고 직접 제작한 달개 900여개를 사발통문 모양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사발통문의 정신이 오늘날 널리 계승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은 전시 마지막 날인 10일 오후 1시에 관람객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한숙씨는 칠흑의 밤 봉준의 집에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불빛이 새나오고, 산속 동물과 엉겅퀴, 민들레 등 꽃과 나무들로 묘사된 민초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한다는 ‘꿈’을, 황의성씨는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지인 동진강 물과 농민군 등 익명의 희생자들을 표현한 가로 10m30cm, 세로 1m26cm 크기의 ‘스러진 넋을 세우고’를 출품했다.
또한 진창윤씨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예술작품이 적은 것은 예술가들의 책임이라며 ‘김개남-백산에 서다’와 ‘녹두장군’을 전시했다.
전시실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이기홍, 고현숙, 박새해의 공동작품 수(壽)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의미하는 304개의 물방울(에어포켓)을 설치하고 그 위에 갑오농민전쟁에서 최근 세월호 참사까지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6분짜리 영상으로 보여준다. 특히 에어포켓 안에서 점차 시들어 가는 하얀 국화에는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는 작가들의 호소가 담겨있다.
작가 박은주씨는 박남준의 시 ‘나도야 물들어간다’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물이 하얀 실을 타고 올라가는 설치 작품을 전시했다. 생명이 하찮게 여겨지는 풍조에 안타까워하면서, 숨 쉬고 보고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는 작가의 예민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또한 김은주씨는 우리들이 침묵이 세월호 참사를, 대한민국의 침몰을 불렀다는 반성과 함께 더 이상 침묵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노란 운동화에 담았다.
이밖에 김두성, 박홍규, 서은형, 신동희, 신보름, 유대수, 이근수, 이봉금, 이준규, 임동식, 임승한, 전정권, 정하영, 조양호, 최진희 작가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기홍 전북민미협 회장은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그동안 누적된 잘못된 관행의 필연적 결과물”이라며 “현실과 역사를 직시하는 작가들은 치열한 붓질을 통해 희망을 찾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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