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울과 노무현

윤중강 / 음악평론가, 공연기획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있었던 날, 서울광장은 온통 노란색 물결이었다. 안숙선 명창의 조창(弔唱)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 노래는 바로 임방울(1904∼1961)의 단가 <추억>이다. 사랑했던 여인의 주검 앞에서, 임방울 명창이 즉흥적으로 만들어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불현 듯 이런 생각에 미쳤다. “노무현과 임방울, 둘은 참 많이 닮았다!”
서민의 사랑을 받았던 명창의 타계는 지금도 회자된다. 임방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고, 만장을 앞세운 긴 행렬은 종로통에 길게 이어졌다. 이 백 명의 여류소리꾼들이 소복을 입고 따랐고, 백 명의 걸인도 명창의 죽음을 애도하며 행렬에 합류했다. 임방울 또한 서울시청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임방울과 노무현을 같이 볼 수 있는 건, 삶의 행보가 비슷하고, 서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같았기 때문이다. 모두 감성에 충실하면서, 대중적 정서를 읽어낼 있던 사람이다.
어릴 때 마마로 인해 얼굴이 살짝 얽어져서 ‘곰보’라고 별명이 있기도 한 임방울! 그는 옥에 갇힌 춘향의 딱한 심정을 마치 자기연민처럼 노래했다. 서울 무대에서 <쑥대머리>를 부른 후, ‘촌놈’ 임방울은 당대 최고 ‘명창’이 되었다. 임방울은 ‘계면조’가 특징이다. 계면조는 슬픈 가락이다. 그는 한 치의 여과 없이, 절절하게 노래했다. 아니 호소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른다. 훗날 어떤 이는 임방울 특유의 계면조가 일제강점기의 서러운 민중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생전 임방울의 소리에 부정적인 견해도 늘 따랐다. 무릇 남성 명창이라면 장쾌한 ‘우조’ 소리에 비중을 두어야 할 터인데, 계면조 위주의 감상주의적인 소리를 비판했다. 사실 임방울의 노래는 긍정적으로 보면 ‘대중취향’적이지만, 달리 보면 ‘대중영합’일 수도 있다. 아울러 총선 당시 정치광고 ‘대통령의 눈물’로 서민들에게 다가갔던 16대 대통령 노무현도 분명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임방울은 그가 활동했던 ‘시대’와 연관 지을 때, 다른 소리꾼과 변별되는 출중한 명창이다. 하지만 만약 임방울의 소리를 오직 ‘음악’적인 측면만 고려해서 다각도로 분석한다면, 누구도 다른 명창에 비해 정녕 탁월하다고 단언할 순 없다. 나는 정치를 모르고, 알고 싶지 않다. 하지만 노무현 또한 ‘정치고수’는 아닌 것 하다. 단지 그의 순수와 열정이 다른 부족함을 많이 감싼 것은 아닐까?
생전 임방울은 경향각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곳이라면 찾아가 소리를 했다. 그의 소리는 시공관이나 원각사보다, 시골장터나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노무현이 그런 것처럼, 임방울에게는 우직한 ‘촌놈근성’은 근원적인 것이었다. 임방울은 생전 소리의 계통이나 법도를 우선시하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노래를 불렀고, 그 배후에는 자기의 분신이기도 한 서민대중들에게 대한 무한한 사랑이 깔려 있다.
그런데 ‘임방울 사후’와 ‘노무현 사후’는 판세가 많이 다르다. 애초 정치판과 국악판을 같이 본다는 자체가 무리일까? 임방울 죽음 이후, 생전 그의 소리에 대한 찬반을 막론하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를 당대의 국창(國唱)으로 추대했다. 더불어서 임방울과 노선을 같이 했다고 해서, 그를 등에 업고 편승하고자 한 소리꾼은 없다. 그저 임방울은 소리꾼 임방울 개인일 뿐이었다.
반면 노무현 사후는 다르다. 노무현과 노선이 달랐던 사람은 더욱 공격의 대상이 된다. 노무현과 노선을 같이 한 사람들은 이에 편승해서 무언가 얻으려 한다. 나는 요즘 ‘포스트 노무현’이라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적자’ 등의 표현이 몹시 거슬린다.
임방울 사후 국악인들은 단합했고, 임방울의 ‘소리의 역사’를 ‘소리의 신화’로 만들었다. 이는 판소리를 더욱더 대중적인 장르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바보대통령’이란 별명을 가진 노무현 또한 이제 하나의 훌륭한 정치적 신화로 될 순 없을까?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 ‘살아있는 전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아름답게 남길 바란다. 죽어서 국창이 된 임방울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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